1469만원 있어야 1만弗 송금 … 연초보다 533만원 더들어

올해 예상치 못한 환율 급등으로 수혜자와 피해자가 극명하게 엇갈렸다.

대표적인 피해자는 '기러기 아빠'다. 환율 급등으로 해외에 유학간 자녀들에게 송금해야 할 돈이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가령 미국에 1만달러를 송금할 경우 연초에는 936만원이 필요했지만 지금(11월 말 기준)은 533만원(49.8%) 늘어난 1469만원이 필요하다.

이 기간 원ㆍ달러 환율이 936원에서 1469원으로 뛰었기 때문이다. 자녀들 생활비를 예전과 같이 맞추려면 더 많은 돈이 필요하지만 국내 경제 사정이 나빠져 그러기도 쉽지 않다.

시중은행 관계자는 "달러 기준 송금액이 줄어드는 바람에 현지에서 학자금 대출을 받거나 아르바이트로 생활비를 충당하는 유학생이 늘고 있다"고 말했다.

환헤지 상품인 키코에 가입한 기업들도 엄청난 손해를 보고 있다. 키코는 환율이 특정 범위에서 움직이면 기업에 유리하지만 특정 범위 이상으로 오르면 기업이 손해를 보는 구조다.

지난해 많이 팔린 키코 상품은 대부분 환율이 1000원을 넘으면 기업들이 환차손을 입는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 코스닥기업인 태산LCD는 키코 피해로 지난 3분기에만 6092억원의 순손실을 기록하며 '흑자부도'를 냈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지난 10월 말 현재 키코에 가입한 487개 수출기업의 손실은 3조1874억원에 달한다. 은행도 '키코 부메랑'을 맞고 있다. 태산LCD가 흑자부도를 내면서 상품을 판 하나은행은 대손충당금을 2507억원이나 쌓았다.

해외펀드 가입자도 울상이다. 투신권은 해외주식에 투자한 만큼 달러 선물을 매도하는 방식으로 환헤지를 하는데 최근 해외 증시가 급락하면서 원래 했던 환헤지도 증시 급락분만큼 줄여야 할 처지다. 이를 위해서는 달러 선물을 매수해야 하는데 이 비용은 결국 투자자 손해로 귀결된다.

이 밖에 정유사와 수입차 업계,중소 부품업체 등 수입 결제액이 많은 기업들과 외화 대출자들도 피해를 호소하고 있다. 특히 올 들어 원ㆍ달러 환율보다 원ㆍ엔 환율이 더 큰 폭으로 뛰면서 엔화 대출자들은 비명을 지르고 있다.

반면 삼성전자와 현대자동차 등 수출 대기업들은 환율 급등으로 이익이 늘어날 전망이다. 증권업계에선 원ㆍ달러 환율이 10원 오르면 삼성전자는 영업이익이 3000억원,현대차는 2000억원 늘어날 것으로 보고 있다.

해외 교포들도 신이 났다. 최근 국내 주식과 부동산 가격이 크게 떨어진데다 원화가치마저 하락해(환율 상승) 투자 매력이 높아졌기 때문이다. 해외 교민들 중에는 지금을 한국에 투자할 적기로 보고 한국투자 설명회를 열어 달라고 요청하기도 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서울 명동과 남대문,동대문 일대 쇼핑타운은 '엔고 특수'로 즐거운 비명이다. 일본 여행업협회(JATA)에 따르면 한국행을 희망하는 일본인 관광객은 올해 12월 해외여행 예약 기준으로 전년 동기대비 68%나 늘었다. 롯데백화점 관계자는 "최근 반찬코너 매출 중 상당수가 일본인 덕분"이라고 말했다.

한국 경제 전체로는 경상수지 개선이 기대된다. 수출 호조로 상품수지가 개선되고 해외여행 감소로 서비스수지 적자가 줄어들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지난 10월 경상수지 흑자가 49억달러로 월간 기준으로 사상 최대를 기록한 것도 상당부분 고환율 덕분이다.

주용석 기자 hohobo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