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칼럼] 취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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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끼 할머니는 시(詩)를 아는 기생 치고 마음 다치지 않는 이를 보지 못했다며 서책을 치우라고 종아리까지 쳤지요. 새끼 할머니의 그 말씀이 옳았습니다,악기나 다루고 춤이나 추는 기생은 담장 안에서 자족할 방도를 찾지만 시를 아는 기생은 세상에 대한 그리움으로 평생 열병을 앓기 마련이니까요. '
김탁환 작 '나,황진이'의 한 대목이다. 여자 아닌 한 인간으로 살고자 했던 황진이의 안타까움은 이렇게 이어진다. '세상의 반이 남정네고 또 반이 여자일진대 여자는 여자라는 이유만으로 서책을 가까이 할 수도 없고,과거에 나설 수도 없으며,세상 일을 논할 기회조차 없습니다. '
황진이가 서럽디 서러웠던 이승을 떠난 지 500년.이 땅 여성의 삶은 실로 놀랍도록 변했다. 여고생의 대학 진학률은 83%로 OECD 국가 중 최고고,여성의 국가고시 합격률은 무섭게 오른다. 외무고시(65.7%)에 이어 행정고시(51.2%)도 절반을 넘었고 사법고시도 38.01%에 달한다. 한국은행 신입직원도 절반(47.2%)이 여성이라는 마당이다.
이러다 남성은 설 자리조차 없어지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올 법하다. 그러나 고개를 돌려보면 사정은 영 딴판이다. 여성 경제활동 참가율은 OECD 국가 중 최하위권이고 특히 대졸 여성은 심각한 수준이다. 뿐이랴.지난해 기준 여성 근로자 67.6%가 비정규직이고 이들의 임금은 남성 정규직의 40%에 불과하다.
경기가 나빠지면 여성의 취업은 한층 더 힘들어진다. 7월 기준 구직 단념자 중 남성은 작년 3월 이후 감소세인데 여성은 5개월 연속 증가세라는 것만 봐도 그렇다. 결국 취업보다 결혼을 선택하는,이른바 취집(취업 대신 시집) 쪽으로 관심을 돌리는 여성이 늘어난다고 한다.
결혼정보업체에 등록하는 대학ㆍ대학원생 회원이 급증한 건 물론 여대생 74%가 '취업 대신 결혼을 생각해봤다'고 답했다는 마당이다. 취업하느라 고생은 고생대로 하고 좌절하느니 한 살이라도 어릴 때 결혼하겠다는 얘기다.
결혼도 전략이라고 주장할지 모른다. 그러나 그 비싼 등록금을 들여 공부하고도 마땅히 쓰일 데를 찾지 못해 결혼한다는 것은 서글픔을 넘어 크나 큰 사회적 손실이 아닐 수 없다. 지하의 황진이가 이 사실을 알면 과연 어떤 표정을 지을지 궁금하다.
박성희 수석논설위원 psh77@hankyung.com
김탁환 작 '나,황진이'의 한 대목이다. 여자 아닌 한 인간으로 살고자 했던 황진이의 안타까움은 이렇게 이어진다. '세상의 반이 남정네고 또 반이 여자일진대 여자는 여자라는 이유만으로 서책을 가까이 할 수도 없고,과거에 나설 수도 없으며,세상 일을 논할 기회조차 없습니다. '
황진이가 서럽디 서러웠던 이승을 떠난 지 500년.이 땅 여성의 삶은 실로 놀랍도록 변했다. 여고생의 대학 진학률은 83%로 OECD 국가 중 최고고,여성의 국가고시 합격률은 무섭게 오른다. 외무고시(65.7%)에 이어 행정고시(51.2%)도 절반을 넘었고 사법고시도 38.01%에 달한다. 한국은행 신입직원도 절반(47.2%)이 여성이라는 마당이다.
이러다 남성은 설 자리조차 없어지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올 법하다. 그러나 고개를 돌려보면 사정은 영 딴판이다. 여성 경제활동 참가율은 OECD 국가 중 최하위권이고 특히 대졸 여성은 심각한 수준이다. 뿐이랴.지난해 기준 여성 근로자 67.6%가 비정규직이고 이들의 임금은 남성 정규직의 40%에 불과하다.
경기가 나빠지면 여성의 취업은 한층 더 힘들어진다. 7월 기준 구직 단념자 중 남성은 작년 3월 이후 감소세인데 여성은 5개월 연속 증가세라는 것만 봐도 그렇다. 결국 취업보다 결혼을 선택하는,이른바 취집(취업 대신 시집) 쪽으로 관심을 돌리는 여성이 늘어난다고 한다.
결혼정보업체에 등록하는 대학ㆍ대학원생 회원이 급증한 건 물론 여대생 74%가 '취업 대신 결혼을 생각해봤다'고 답했다는 마당이다. 취업하느라 고생은 고생대로 하고 좌절하느니 한 살이라도 어릴 때 결혼하겠다는 얘기다.
결혼도 전략이라고 주장할지 모른다. 그러나 그 비싼 등록금을 들여 공부하고도 마땅히 쓰일 데를 찾지 못해 결혼한다는 것은 서글픔을 넘어 크나 큰 사회적 손실이 아닐 수 없다. 지하의 황진이가 이 사실을 알면 과연 어떤 표정을 지을지 궁금하다.
박성희 수석논설위원 psh77@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