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기업,불황 이긴 종신 고용 고집
도요타ㆍ캐논 등 경제회복 견인

아소 다로 일본 총리는 지난 1일 게이단렌의 미타라이 후지오 회장과 일본 상공회의소 오카무라 다다시 회장 등 재계 대표들과 간담회를 갖고 내년 봄 임금협상(춘투)에서 근로자들의 임금을 인상하고,고용도 유지해줄 것을 요청했다. 내수경기 부양을 위해 기업들이 할 수 있는 건 다 해달라는 당부였다.

하지만 재계로부터 돌아온 답변은 "고용 유지엔 최대한 노력하겠지만 고용안정을 위해선 임금 인상이 어렵다"는 것이었다. 일본 재계가 세계적 동시불황을 맞아 '고용유지는 예스(Yes),임금 인상은 노(No)'라는 뜻을 분명히 한 것이다. 게이단렌은 이미 회원사에 내년 임금협상에서 "임금을 깎더라도 고용안정을 최우선시 하라"는 지침을 내려놓은 상태다.

불황기에도 고용 유지를 최고 목표로 삼는 일본 기업들의 진면목이 다시 드러난 셈이다. 일본 기업들은 1990년대 '10년 장기불황'때도 고용만은 포기하지 않았다. 1998년 국제 신용평가회사인 무디스가 '기존의 종신고용체제를 유지하는 한 도요타자동차의 미래는 어둡다'며 도요타의 신용등급을 최상급인 Aaa에서 Aa1으로 낮췄을 때도 오쿠다 히로시 당시 도요타 회장은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고 잘라 말했다.

그로부터 4년 뒤인 2002년부터 일본 경제가 되살아나자 세계는 그 비결을 종신고용을 축으로 한 '일본식 경영'에서 찾았다. 회사가 어려워지면 직원부터 자르는 미국식 경영을 도입했던 소니의 회생이 지지부진했던 데 반해 직원을 가족처럼 여기고,인재를 중시하던 도요타,캐논 등 '고집스런 일본 기업'들이 일본 경제의 회복을 견인했기 때문이다.

일본 기업들은 1990년대 초반 거품 붕괴,급속한 세계화,인구 고령화 등의 환경 변화에 따라 인사제도를 바꿔야 했다. 연공서열과 종신고용으로 대표되던 일본 기업 특유의 인사시스템을 버리고 개인 성과에 따른 보상,비용 절감을 위한 인력 감축 등 미국식 인사시스템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압력이 컸다.

그러나 미국식 경영을 그대로 받아들인 기업들은 모두 결과가 좋지 못했다. 미국식 단기 업적주의가 경영자들의 장기적 안목을 흐려 놓았기 때문이다.

반면 도요타,캐논,닛산과 같은 기업들은 글로벌 스탠더드를 어디까지 받아들이고,일본 고유의 가치는 어느 수준까지 유지해야 할지를 고민했다. 예컨대 캐논의 경우 종신고용은 유지하면서 연공서열을 파괴하는 방식을 택했다. 성과주의를 도입하되 성과를 내지 못하더라도 자르지 않고 다시 기회를 주는 것이다. 사토 가쓰히코 전 포드재팬 회장은 "성공한 일본 기업들은 최소한의 글로벌 스탠더드(글로벌 미니멈)를 받아들이되,일본 기업 고유의 가치를 유지한 회사들"이라고 밝혔다.

도쿄=차병석 특파원 chab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