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인호 <서울대 교수ㆍ경제학>

'자산기반 사회복지'의 시대, 연금ㆍ펀드 세제혜택 늘릴 때

지난 몇 년 새 급속한 성장을 이룩한 국내 펀드시장이 중요한 갈림길에 서있다. 세계적 경제위기 속에 국내 외환시장과 금융시장 역시 연일 출렁이며 불안감이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나마 국내 투자자들이 여러 차례 경험을 통해 성숙한 투자 자세를 배운 것으로 보이는 점은 다행스럽다. 불안한 금융시장의 동향이 대규모 펀드환매를 불러오지 않았다는 사실은 투자자들이 금융시장의 작동원리에 대해 상당한 이해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개인이 기업의 사업계획을 판단하고 그에 따라 투자하는 것은 대개의 경우 불가능하다. 무엇보다도 개인이 일상적인 경제활동을 하면서 기업의 수익성을 조사할 시간적 여유가 없고,시간이 있다 하더라도 전문성이 결여돼 있기 때문이다. 펀드는 전문적인 운용사가 체계적이고 지속적인 관리를 하므로 개인투자자들이 겪는 이런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다. 그러나 전문적인 운용사들도 단기적으로 시장 전체의 침체를 피해가기는 어렵다. 그렇다면 이러한 위기를 어떻게 이겨낼 것인가. 이를 극복하는 유일한 방법은 장기투자를 하는 것뿐이다.

정부 차원에서의 개인 장기투자 유도는 투자자 수익이란 측면에서 뿐만 아니라 최근 논의되고 있는 '자산기반 사회복지'(Asset based welfare) 제도의 기반 마련을 위해서도 중요하다. 자산기반 사회복지란 개인의 자산에 기반한 사회복지제도를 뜻한다.

최근 고령화 및 저출산에 따라 과거와 같이 정부가 세금을 동원,'요람에서 무덤까지' 국민의 생활을 지원해주는 방식의 복지모델은 재정난에 직면할 수 있어 더 이상 유지하기 힘들다. 따라서 국민 개개인이 주식ㆍ펀드 투자나 저축으로 자산을 불려 스스로의 복지를 책임지도록 유도할 필요가 있다.

이 때 정부가 제시할 수 있는 효과적인 방법은 장기투자자에 대한 세제혜택을 주는 것이다. 이는 미국 일본 영국 등에서 쉽게 그 예를 찾을 수 있다.

미국은 고령화 사회에 대비하고 자녀교육비를 지원하기 위해 연방세법 401조 및 529조에서 해당 저축에 대한 과세특례를 주는 제도를 두고 있다. 노년층 생활자금 마련을 위한 저축을 지원하기 위해 1980년대 초부터 퇴직연금의 한 종류인 '401(k)플랜'에 대한 과세특례를 부여했고,2001년부터는 자녀 교육비 마련 저축인 '529플랜'에 대해 소득세 면제혜택을 부여해 본인과 자녀의 미래를 대비한 투자를 장려하고 그 성과를 거두고 있다.

일본에서도 여러 금융상품에 관한 규제ㆍ법체계를 정비했다. 특히 2001년부터는 미국의 401(k)플랜과 유사한 확정형 퇴직연금 제도 활성화를 위해 해당 제도를 도입하는 회사와 근로자에게 세제혜택을 부여하는 제도를 도입했다. 영국에서는 자녀 출산장려 및 학자금 지원을 위해 2005년부터 '어린이 트러스트 펀드'에 대한 과세특례와 보조금 지원 제도를 시행하고 있으며,일반 국민들의 저축생활을 장려하기 위해 1999년부터 '개인 저축계좌' 제도를 도입해 해당 투자계좌에 대한 세제혜택을 점차 확대하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이러한 정책들은 단기적으로는 세수를 감소시킬 수도 있다. 그러나 장기적 측면에서 보면,투자자금을 이용한 산업지원으로 기업 활동에 따른 세수증가,사회복지 부문에서의 정부지출 감소 등 국가 전체의 경쟁력 강화와 국민생활 지원 모두에서 효율적인 성과를 거둘 수 있다.

현재의 금융위기도 지나치게 당황하지 않고 경제의 체질을 개선하는 기회로 삼는다면 앞으로 좀 더 견고한 성장을 이룩하는 받침대로 이용할 수 있다. 이러한 체질개선의 중요한 통로로 금융당국에서 꼭 펀드 관련 세제의 개선을 꾀하도록 당부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