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현실의 산업정책 읽기] 경제학자들의 변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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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현실 <논설ㆍ전문위원 경영과학博 ahs@hankyung.com>
인터넷에서 '미네르바'가 뜬다고 하자 제도권의 한 경제학자는 "나름대로는 같은 맥락에서 경고를 했다"며 씁쓸한 기분을 숨기지 않았다. "경제는 심리라는 걸 뻔히 아는데 극단적 비관론을 펴기는 어렵다"는 것이 그 하나이고 "지나친 비관론을 펴면 정보기관이 전화를 걸어와 그 근거가 무엇인지 꼬치꼬치 물어 부담이 된다"는 게 또 다른 하나다. 변명 같지만 선의로 해석하면 첫 번째는 책임의식이고,두 번째는 실명(實名)의 한계를 각각 얘기한 것이다.
흔히 경제예측을 기상예측에 비유한다. 그러나 기상예측은 틀리면 난리지만 경제예측은 맞으면 오히려 난리다. 기상예측이 훨씬 더 어렵지만 우리 사회가 경제예측의 오류에 더 관대한(?) 덕분에 대부분의 경제학자들은 틀려도 별 문제없이 살아가는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모든 예측이 그렇듯이 경제예측도 어렵다. 그래서 더 관심을 갖겠지만 그럴수록 경제학자들도 답답한 모양이다. 오죽하면 한국은행 총재를 지낸 한 경제학자는 기자들에게 "차라리 점쟁이에게 물어보라"고까지 했겠는가. 그런 경제예측도 이제는 하나의 시장, 산업으로 변했다. 예측을 하는 사람이나 기관의 이해관계가 예측결과와 무슨 상관은 없는지 살펴보지 않으면 이용당할 수도 있는 세상이 됐다. 극단적 예측일 경우는 더욱 그렇다.
게다가 전문가들이란 사람들 중에는 예측에 대한 투기심리를 가진 이들도 출현하고 있다. 대부분의 경제학자들과 달리 극단적 비관론,극단적 낙관론을 펴다 맞히기만 하면 그야말로 '나홀로 대박'이다. 일단 한번 성공하면 바로 대가(大家)로 대접받는다. 대가 반열에 올라서기만 하면 나중에 혹 틀리더라도 관대한 해석이 나온다. 가만 내버려뒀으면 맞았을 텐데 정부가 손쓰는 바람에 실제로 일어나지 않았다고 말이다. 이쯤 되면 예측투기를 해도 전혀 손해 볼 게 없다.
여기서 극단론 자체를 폄하할 의도는 없다. 따지고 보면 평균적 견해에서 벗어나지 않으려는 것 또한 큰 문제다. 델파이라는 예측방법론의 한계도 그런 것이다. 전문가들도 다른 많은 전문가들이 가진 견해가 무엇인지 알게 되면 자기 생각을 그쪽으로 수정해 가는 경향이 있다. 일종의 집단적(군중) 심리가 작용한다.
경제예측이 정확하면 자본주의 시장경제는 그만큼 굴곡을 덜 겪을 수 있다. 경제가 펀더멘털에서 크게 벗어났을 때 신뢰성 높은 예측은 경제를 다시 펀더멘털로 돌아갈 수 있게 한다. 여기서 주의할 것은 평균적 견해가 반드시 신뢰할 만한 예측을 의미하진 않는다는 점이다. 반대로 잘못된 예측은 경제를 펀더멘털로부터 더욱 멀어지게 할 위험이 있다. 극단적 낙관론이나 비관론을 펼 때는 그만큼 신중해야 하는 이유다.
다른 한편으로는 경제예측을 전문가들 몫이라고만 할 수도 없다. 예측의 오류를 줄이기 위한 각자의 노력도 매우 중요하다. 우리 개인은 잘해야 '제한적 합리성'을 갖고 있을 뿐이다. 그런 점에서 자신과 생각이 다른 사람들을 되도록 많이 만나는 게 좋다. 기업, 정부도 사고의 유연성을 갖춰야 한다. 다양한 연령 성별 인종 등으로 이사회나 내각을 짜는 게 바람직하다. 토론과 비판은 기본이다. 그래야 '블랙 스완(검은 백조)'이 나타나더라도 덜 놀랄 것 아닌가.
인터넷에서 '미네르바'가 뜬다고 하자 제도권의 한 경제학자는 "나름대로는 같은 맥락에서 경고를 했다"며 씁쓸한 기분을 숨기지 않았다. "경제는 심리라는 걸 뻔히 아는데 극단적 비관론을 펴기는 어렵다"는 것이 그 하나이고 "지나친 비관론을 펴면 정보기관이 전화를 걸어와 그 근거가 무엇인지 꼬치꼬치 물어 부담이 된다"는 게 또 다른 하나다. 변명 같지만 선의로 해석하면 첫 번째는 책임의식이고,두 번째는 실명(實名)의 한계를 각각 얘기한 것이다.
흔히 경제예측을 기상예측에 비유한다. 그러나 기상예측은 틀리면 난리지만 경제예측은 맞으면 오히려 난리다. 기상예측이 훨씬 더 어렵지만 우리 사회가 경제예측의 오류에 더 관대한(?) 덕분에 대부분의 경제학자들은 틀려도 별 문제없이 살아가는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모든 예측이 그렇듯이 경제예측도 어렵다. 그래서 더 관심을 갖겠지만 그럴수록 경제학자들도 답답한 모양이다. 오죽하면 한국은행 총재를 지낸 한 경제학자는 기자들에게 "차라리 점쟁이에게 물어보라"고까지 했겠는가. 그런 경제예측도 이제는 하나의 시장, 산업으로 변했다. 예측을 하는 사람이나 기관의 이해관계가 예측결과와 무슨 상관은 없는지 살펴보지 않으면 이용당할 수도 있는 세상이 됐다. 극단적 예측일 경우는 더욱 그렇다.
게다가 전문가들이란 사람들 중에는 예측에 대한 투기심리를 가진 이들도 출현하고 있다. 대부분의 경제학자들과 달리 극단적 비관론,극단적 낙관론을 펴다 맞히기만 하면 그야말로 '나홀로 대박'이다. 일단 한번 성공하면 바로 대가(大家)로 대접받는다. 대가 반열에 올라서기만 하면 나중에 혹 틀리더라도 관대한 해석이 나온다. 가만 내버려뒀으면 맞았을 텐데 정부가 손쓰는 바람에 실제로 일어나지 않았다고 말이다. 이쯤 되면 예측투기를 해도 전혀 손해 볼 게 없다.
여기서 극단론 자체를 폄하할 의도는 없다. 따지고 보면 평균적 견해에서 벗어나지 않으려는 것 또한 큰 문제다. 델파이라는 예측방법론의 한계도 그런 것이다. 전문가들도 다른 많은 전문가들이 가진 견해가 무엇인지 알게 되면 자기 생각을 그쪽으로 수정해 가는 경향이 있다. 일종의 집단적(군중) 심리가 작용한다.
경제예측이 정확하면 자본주의 시장경제는 그만큼 굴곡을 덜 겪을 수 있다. 경제가 펀더멘털에서 크게 벗어났을 때 신뢰성 높은 예측은 경제를 다시 펀더멘털로 돌아갈 수 있게 한다. 여기서 주의할 것은 평균적 견해가 반드시 신뢰할 만한 예측을 의미하진 않는다는 점이다. 반대로 잘못된 예측은 경제를 펀더멘털로부터 더욱 멀어지게 할 위험이 있다. 극단적 낙관론이나 비관론을 펼 때는 그만큼 신중해야 하는 이유다.
다른 한편으로는 경제예측을 전문가들 몫이라고만 할 수도 없다. 예측의 오류를 줄이기 위한 각자의 노력도 매우 중요하다. 우리 개인은 잘해야 '제한적 합리성'을 갖고 있을 뿐이다. 그런 점에서 자신과 생각이 다른 사람들을 되도록 많이 만나는 게 좋다. 기업, 정부도 사고의 유연성을 갖춰야 한다. 다양한 연령 성별 인종 등으로 이사회나 내각을 짜는 게 바람직하다. 토론과 비판은 기본이다. 그래야 '블랙 스완(검은 백조)'이 나타나더라도 덜 놀랄 것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