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펀드는 높은 보수율 그대로 유지 '눈총'
금융위 "운용보고서에 판매ㆍ운용보수 기재해야"

직장인 이 모씨(43)는 5년 넘게 펀드에 가입 중인 장기투자자다. 올 들어 증시가 급락했지만 길게 보고 적립식으로 꾸준히 자금을 넣고 있다. 하지만 최근 뜻밖의 고민이 생겼다. 자신과 동일한 펀드의 후속상품에 가입한 동료보다 더 많은 운용보수를 내고 있다는 걸 뒤늦게 알았기 때문이다. 운용사에 문의했더니 "5년 전에는 그 정도의 보수율이 보통이었는데 정 원한다면 펀드를 해지하고 신상품에 다시 가입하라"는 답변이 돌아왔다. 이씨는 결국 운용보수가 낮은 상품으로 갈아탔다.


펀드투자자들이 허술한 제도로 뜻하지 않은 피해를 입고 있다는 불만이 고조되고 있다. 감독당국의 제도적 뒷받침이 미흡하거나 자산운용사들의 관리 소홀이 주된 이유다. 이씨의 경우 운용사가 약관을 변경해 운용보수를 낮춰주면 되지만 대부분의 운용사는 기존 약관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시리즈 펀드의 보수체계가 동일해야 한다는 의무 규정이 없어서다.

최근 해외펀드에서 단타족이 기승을 부리는 바람에 기존 투자자들이 손해를 보고 있는 것은 약관의 맹점 탓이다. 국내펀드는 지난해부터 선취형 상품에도 환매수수료를 의무적으로 부과하도록 표준약관을 바꿨다. 하지만 표준약관이 없는 해외펀드는 선취형 상품 중에도 환매수수료가 없는 경우가 많다 보니 일부 투자자들이 해외증시가 급등하면 목돈을 넣었다가 다음 날 환매를 신청,차익을 실현하는 사례가 잇따르고 있다. KB운용이 최근 일부 선취형 중국 펀드에 대해 추가 입금을 금지키로 한 것과,하나UBS운용이 선취형 일본펀드에 환매수수료를 부과한 것은 이런 이유에서다.

이머징펀드도 곳곳에 함정이 숨어 있다. 투자지역이 멀어 시차가 크거나 여러 국가인 경우 대개 펀드를 환매하면 신청 2~3일 이후 주가로 보유주식을 팔고 실제 자금은 7~9일 이후에 투자자 계좌로 입금된다. 주식을 매도한 이후 입금을 위해 원화로 환전하기까지 4~7일 사이에 노출되는 환위험은 남아 있는 펀드투자자에게 그대로 전가된다.

이 밖에 운용보수와 판매보수,각종 수수료 등 펀드 총비용(TER)을 계산할 때 거래수수료를 포함하는지 여부도 일정치 않아 펀드 간 정확한 비교가 쉽지 않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자산운용협회 관계자는 "거래수수료를 총비용과 별도로 공시하도록 관련 지침을 보완해 이달 중으로 각 운용사에 통보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한편 내년부터는 재산이나 금융지식이 현저히 부족한 사람은 파생상품펀드 투자를 할 수 없게 된다. 금융위원회는 투자자가 본인의 재산상태 등에 관한 정보를 판매회사에 제공하지 않을 경우 파생상품펀드를 판매하지 못하도록 투자자보호장치를 강화하는 내용의 '금융투자업규정 개정안'을 지난 2일 입법예고했다. 금융위 관계자는 "파생상품은 투자 위험이 큰 만큼 적합한 사람에게만 판매해야 한다는 취지"라며 "이미 발표한 파생상품펀드 판매인력에 대한 등급제 도입과 함께 시행될 경우 파생상품 판매의 불완전판매를 해소하는 데 기여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개정안에는 또 3개월마다 제공되는 자산운용보고서에 투자자들이 실제로 지급한 운용보수와 판매보수액을 분기 연간 누적 기준으로 나눠 기재토록 하는 내용도 포함했다. 지금까지 판매사와 자산운용사는 보수·수수료율만 공개하고 실제 지급액은 알리지 않았다. 또 판매사는 펀드 판매시 제공서비스 내용을 투자자에게 의무적으로 설명해야 한다. 이 같은 내용의 규정 개정안은 입법예고를 거쳐 이달 말 확정될 예정이다. 금융위 관계자는 "투자자들은 앞으로 지급보수나 수수료 수준을 봐가면서 판매사와 운용사에 합당한 서비스를 요구할 수 있게 됐다"고 설명했다.

박해영 기자 bon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