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금인상 없는 근로 연장' 합의
경영위기 딛고 相生 효과 톡톡


2004년 초 독일 노동운동사에 일대 획을 긋는 사건이 벌어졌다. 지멘스노조가 임금인상없는 노동시간 연장에 합의한 것이다. 그 대가로 노조는 '고용안정'을 보장받았다.

당시 지멘스는 경영이 어려워지자 임금이 싼 헝가리로 공장을 이전하기로 결정했다. 고임금 고복지로 글로벌 경쟁력을 상실한 지멘스는 생산기지 이전시기만 저울질하고 있던 중이었다. 노조의 강력한 반대에도 회사 측은 공장이전 계획을 굽히지 않았다. 결국 노조는 고용유지를 위해 임금인상없이 근로시간을 연장키로 양보를 하고 말았다. 독일보다 경제 수준이 뒤처졌지만 노조의 권력이 막강한 한국의 노동현장에 이러한 양보교섭이 시사하는 바는 크다.

그해 6월 독일금속노조와 지멘스직장평의회는 지멘스그룹과 산별협약 보완협약을 맺었다. 협약내용은 2년간 일자리를 보장받는 대신 두 개의 휴대폰 공장 4000여명의 근로자가 추가적인 임금지급 없이 노동시간을 주당 35시간에서 40시간으로 늘리기로 한 것.독일에서 헝가리로 일자리 2000개가 이동하는 것을 막기 위해 노조가 노동비용의 30%를 줄이는 데 합의한 '양보협약'을 맺은 것이다.

지멘스를 비롯해 폭스바겐,다임러크라이슬러,BMW 등 독일 대기업이 속해 있는 독일 금속노조도 임금 인상없이 근로시간을 연장하는 데 합의했다.

금속노조의 양보교섭 이후 다임러크라이슬러는 신델핑겐 공장을 해외로 옮기지 않고 고용을 유지하는 대신 임금 2.79%삭감,노동시간 주당 35시간에서 39시간으로 연장을 결정했었다.

BMW에서도 2001년 비슷한 사건이 벌어졌다. 회사 측이 체코에 새 공장을 지으려 하자 노조는 일자리를 지키기 위해 "주당 3시간 더 일하고 토요일에도 평일 보수를 받겠다"는 전향적인 의사를 밝힌 것이다. "5000명의 근로자 중 절반은 타사 파견근로자로 충당할 수 있고 탄력적 근로시간 연장도 좋다"는 제안까지 내놓았다. 결국 BMW는 체코 대신 2005년 라이프치히에 새 공장을 세웠다. 고용을 유지하면서도 생산량,매출,이익도 함께 늘어나는 상생의 효과를 봤다.

당시 독일에 진출해 있던 미국 GM독일공장도 독일 노조와 감원에 합의했었다. GM 독일지사 노조는 "명예퇴직이나 조기퇴직 등의 방식을 통한 감원에 합의했다"며 "회사부터 살리고 난 뒤 회사를 떠난 동료 직원들을 다시 불러들이기로 했다"는 전향적인 모습을 보였었다.

이웃 일본도 잃어버린 10년 기간인 1990년대 임금삭감을 통한 고용유지를 택한 기업들이 적지 않았다.

2003년 일본의 노동자들은 임금협상을 앞두고 10년간 지속된 경기침체,5년간 물가 급등 상황에서 근로자들이 고통을 분담하겠다며 임금인상을 요구하지 않기로 결정한 바 있다.

김동욱 기자 kimdw@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