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현장] "100의 0.88제곱 틀렸잖아요"...독자는 정말 무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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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저러한 책일 것이라 판단해 외국 출판사와 계약을 맺고 번역까지 마쳤는데 원고가 예상과 영 다를 때는 참으로 난감하다. 송금한 계약금과 번역료 손실을 고스란히 감수하고 포기할 것이냐,기대에 못 미치지만 눈 딱 감고 출간할 것이냐 하는 선택의 기로에 놓인다. 대체로 후자를 선택하는 경우가 더 많다.
대부분이 이와 유사한 상황에서 후자 쪽으로 기운다는 것은 과학적으로도 증명됐다. 대표적인 예가 '콩코드의 오류'다. 영국과 프랑스가 공동 개발한 초음속 여객기 콩코드는 개발 도중 엄청난 경비를 들였으나 채산성이 전혀 없을 것으로 예측됐다.
하지만 사업을 접는 것은 투자한 거금을 모두 날리는 낭비라는 이유로 개발 작업은 계속됐다. 이미 지출된 비용에 얽매어 비합리적으로 선택하는 것을 행동경제학에서는 '매몰비용(sunk cost)효과'라고 부른다. 일종의 '못 먹어도 고(go)'다.
지난해 출간한 <행동경제학>의 번역 원고를 처음 읽었을 때가 그런 난감한 상황이었다. 대중서를 기대했는데 대학교재 수준의 전문서였다.
그렇다고 노벨경제학상을 받은 이론을 처음 소개하는 기회를 포기할 수는 없었다. 편집과 디자인에 공을 들이다 보니 비용은 점점 커졌고,출간 후 신문광고까지 했으니 손익분기점은 더욱 높아졌다. 비로소 우리는 매몰비용효과의 올가미에 걸려들었음을 깨달았다.
그런데 뜻밖에도 독자들의 반응은 따끈했다. 게다가 어려운 경제학 수식의 오류를 지적하는 메일이 꾸준히 날아왔다. 부끄럽게도 우리 내부에는 100의 0.88제곱이 나오는 수식을 이해할 사람이 없었다. 독자들이 지적한 몇 가지 오류 중에는 편집과정에서 나온 실수도 있었지만 원서의 오류도 있었다. 덕분에 콧대 높은 일본 출판사에 예리한 지적을 날려주며 한국 독자의 수준을 과시하는 뿌듯함도 맛봤다.
일상의 대화에서도 매몰비용이라는 말이 심심찮게 쓰이는 것을 보면서 독자들이 베스트셀러 순위만 좇는 게 아니라는 사실을 거듭 확인했다. 강호의 고수처럼 숨어 있는 수많은 고급 독자를 떠올리면 든든함과 함께 경외감마저 든다. 팔리는 책 없다고 한탄하지 말고 좋은 책 못 냈음을 한탄하라는 한 선배의 말이 떠오른다.
여승구 지형출판사 대표
대부분이 이와 유사한 상황에서 후자 쪽으로 기운다는 것은 과학적으로도 증명됐다. 대표적인 예가 '콩코드의 오류'다. 영국과 프랑스가 공동 개발한 초음속 여객기 콩코드는 개발 도중 엄청난 경비를 들였으나 채산성이 전혀 없을 것으로 예측됐다.
하지만 사업을 접는 것은 투자한 거금을 모두 날리는 낭비라는 이유로 개발 작업은 계속됐다. 이미 지출된 비용에 얽매어 비합리적으로 선택하는 것을 행동경제학에서는 '매몰비용(sunk cost)효과'라고 부른다. 일종의 '못 먹어도 고(go)'다.
지난해 출간한 <행동경제학>의 번역 원고를 처음 읽었을 때가 그런 난감한 상황이었다. 대중서를 기대했는데 대학교재 수준의 전문서였다.
그렇다고 노벨경제학상을 받은 이론을 처음 소개하는 기회를 포기할 수는 없었다. 편집과 디자인에 공을 들이다 보니 비용은 점점 커졌고,출간 후 신문광고까지 했으니 손익분기점은 더욱 높아졌다. 비로소 우리는 매몰비용효과의 올가미에 걸려들었음을 깨달았다.
그런데 뜻밖에도 독자들의 반응은 따끈했다. 게다가 어려운 경제학 수식의 오류를 지적하는 메일이 꾸준히 날아왔다. 부끄럽게도 우리 내부에는 100의 0.88제곱이 나오는 수식을 이해할 사람이 없었다. 독자들이 지적한 몇 가지 오류 중에는 편집과정에서 나온 실수도 있었지만 원서의 오류도 있었다. 덕분에 콧대 높은 일본 출판사에 예리한 지적을 날려주며 한국 독자의 수준을 과시하는 뿌듯함도 맛봤다.
일상의 대화에서도 매몰비용이라는 말이 심심찮게 쓰이는 것을 보면서 독자들이 베스트셀러 순위만 좇는 게 아니라는 사실을 거듭 확인했다. 강호의 고수처럼 숨어 있는 수많은 고급 독자를 떠올리면 든든함과 함께 경외감마저 든다. 팔리는 책 없다고 한탄하지 말고 좋은 책 못 냈음을 한탄하라는 한 선배의 말이 떠오른다.
여승구 지형출판사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