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마을] 검은돈, 피묻은 돈, 글로벌 범죄 체인점 '맥마피아'...국경없는 조폭 맥마피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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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초기에 무뢰배로 지칭된 자들은 주로 중이나 백정,도망노비,산간이나 절간에 숨어든 도둑떼 등이었다. 조선 후기로 내려올수록 무뢰배의 수는 더욱 늘어난다. 그래서 무뢰배와 무뢰한 짓을 한다 해서 겸인배로 바뀐다. 겸인이란 종친이나 대관 가까이 머무는 하인 또는 가신을 말하는데 그들은 방문객 응대,문서 수발,행차 호종,재산 관리 등의 일을 했다.
겸인은 어느 때부터인지 말을 타고 활을 쏘는 대신 치부책을 쓰는 데 더 많은 힘을 기울이게 되었다. 그러면서 남의 영업권을 빼앗거나 힘 없는 상인들로부터 분세(分稅)를 징수하기도 했다. 역사학자 전우용은 <서울은 깊다>(돌베개)에서 이들을 '한국적 천민자본주의의 비조(鼻祖)'로 명명했다.
겸인의 힘은 갈수록 커졌다. 개항 후 당시 권력자인 민태호 민영환 형제의 겸인이었던 송병준은 내부대신을 거쳐 일황으로부터 작위까지 받는 초특급 매국노로 거듭난다. 나라까지 팔아먹은 그는 사욕 말고는 아무것에도 가치를 두지 않는 무뢰배의 전형이 되었다. 공적 의무의 대상인 국가가 사라진 일제 강점기에 자본의 무뢰배적 성격은 이렇게 증폭된 것이다.
인간이 존재하는 곳은 어디든 천민자본주의적 속성이 자연스럽게 나타나는 모양이다. 국경ㆍ종교ㆍ인종을 뛰어넘어 체인화된 국제 범죄조직을 생생하게 다룬 <국경 없는 조폭 맥마피아>에서도 이런 사례는 넘쳐난다. 제목에 등장하는 맥마피아는 '마피아의 후예' 또는 '마피아 2세대'를 지칭한다.
저자는 공산주의 붕괴 이후 발칸반도의 불가리아,세르비아,보스니아,슬로베니아,마케도니아 등에서 기업으로 위장한 마피아와 관료ㆍ정치인이 빚어내는 '정범(政犯)유착'의 사례를 적나라하게 서술하는 것으로 이야기를 시작한다. 이 책에는 이처럼 부패한 정치세력들이 자금 조달을 위해 범죄조직과 연계를 맺는 과정이 수없이 등장한다.
이야기의 무대는 소비에트 연방이 해체된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전 세계 엑스터시 밀매의 중심지인 이스라엘,지하경제와 지상경제가 공생하는 두바이,'419'라는 국제 금융 사기의 메카인 나이지리아,아파르트헤이트가 붕괴된 남아프리카,마약 소지에 대한 처벌을 합법에 가깝게 완화한 캐나다와 마약과의 전쟁을 치르는 이웃나라 미국,폭력과 학살이 난무하는 콜롬비아,사이버 지하세계의 힘이 막강한 브라질 등으로 옮겨간다. 그러면서 마피아의 활동무대가 전 세계로 확대될 뿐만 아니라 조직화되고 있는 모습들을 잘 보여준다.
범죄조직의 대명사로 지칭되는 야쿠자의 나라 일본도 빼놓을 수 없다. 야쿠자는 매춘과 도박으로 세력을 키워왔지만 지금은 태평양지역의 합법 경제에 파고들었다. 뿐만 아니라 야쿠자는 조직원 부족 문제를 중국 갱단에 하청주는 방식으로 해결하고 있다.
이야기의 종착점은 중국이다. 1949년까지 중국은 아편 수출국이었으며 공산당을 포함한 중국의 정치적 운동가들도 범죄조직의 자금을 지원받은 경험이 있다. 모조품 제조에서는 최고의 기술과 시장을 갖고 있는 중국의 감옥에는 이미 마약 중독자들이 넘쳐나고 있다. 그런 중국의 넘치는 잉여노동력이 전 세계로 속속 스며들고 있다. 저자는 따라서 중국을 보면 마피아 세계의 미래가 보인다고 결론내린다.
그는 지난 20년 동안 자유화된 글로벌 금융시장이 마피아의 세력을 크게 키웠다고 주장한다. 사이버를 이용한 금융범죄의 규모와 폭까지 키워가고 있는 마피아들이 케이만,브리티시버진제도 등을 이용해 합법적으로 돈세탁을 하면서 점점 교묘해지고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변칙적 금융거래를 단시간에 틀어막을 능력을 가진 서방세계가 이들의 현금 흐름을 차단하는 것이 국제 범죄집단을 단속하는 가장 성공적인 방법이라고 말한다.
마약의 합법화도 하나의 대안이라고 주장한다. 유엔은 이미 조직범죄 활동비의 70%가 마약에서 나온다는 추정치를 내놓았다. 1920~30년대 미국은 금주정책을 폈지만 미국보다 몇 년 앞서 금주정책을 포기한 캐나다의 불법 상품이 대거 유입되는 바람에 '시그램'을 세계 최대 주류회사로 키운 일밖에 다른 효과는 없었다는 전례를 들면서 마약을 합법화하는 것만이 마피아에 치명타를 가할 수 있다고 말한다.
이 책을 읽으면서 정말 부러웠던 것은 이런 수준 높은 탐사보도 책을 내놓을 수 있는 그들의 능력이다. 영국 BBC방송 기자인 저자는 2004년 5월부터 3년간 수많은 나라를 현지 조사하면서 300여차례의 인터뷰를 가졌다고 한다. 그런 노력을 뒷받침하는 시스템이 있기에 맥마피아를 주제로 뛰어난 르포를 완성할 수 있었을 것이다. 나는 560쪽이나 되는 이 책을 읽는 내내 왜 우리는 이런 책을 펴내지 못하는가를 자책할 수밖에 없었다.
한기호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장
겸인은 어느 때부터인지 말을 타고 활을 쏘는 대신 치부책을 쓰는 데 더 많은 힘을 기울이게 되었다. 그러면서 남의 영업권을 빼앗거나 힘 없는 상인들로부터 분세(分稅)를 징수하기도 했다. 역사학자 전우용은 <서울은 깊다>(돌베개)에서 이들을 '한국적 천민자본주의의 비조(鼻祖)'로 명명했다.
겸인의 힘은 갈수록 커졌다. 개항 후 당시 권력자인 민태호 민영환 형제의 겸인이었던 송병준은 내부대신을 거쳐 일황으로부터 작위까지 받는 초특급 매국노로 거듭난다. 나라까지 팔아먹은 그는 사욕 말고는 아무것에도 가치를 두지 않는 무뢰배의 전형이 되었다. 공적 의무의 대상인 국가가 사라진 일제 강점기에 자본의 무뢰배적 성격은 이렇게 증폭된 것이다.
인간이 존재하는 곳은 어디든 천민자본주의적 속성이 자연스럽게 나타나는 모양이다. 국경ㆍ종교ㆍ인종을 뛰어넘어 체인화된 국제 범죄조직을 생생하게 다룬 <국경 없는 조폭 맥마피아>에서도 이런 사례는 넘쳐난다. 제목에 등장하는 맥마피아는 '마피아의 후예' 또는 '마피아 2세대'를 지칭한다.
저자는 공산주의 붕괴 이후 발칸반도의 불가리아,세르비아,보스니아,슬로베니아,마케도니아 등에서 기업으로 위장한 마피아와 관료ㆍ정치인이 빚어내는 '정범(政犯)유착'의 사례를 적나라하게 서술하는 것으로 이야기를 시작한다. 이 책에는 이처럼 부패한 정치세력들이 자금 조달을 위해 범죄조직과 연계를 맺는 과정이 수없이 등장한다.
이야기의 무대는 소비에트 연방이 해체된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전 세계 엑스터시 밀매의 중심지인 이스라엘,지하경제와 지상경제가 공생하는 두바이,'419'라는 국제 금융 사기의 메카인 나이지리아,아파르트헤이트가 붕괴된 남아프리카,마약 소지에 대한 처벌을 합법에 가깝게 완화한 캐나다와 마약과의 전쟁을 치르는 이웃나라 미국,폭력과 학살이 난무하는 콜롬비아,사이버 지하세계의 힘이 막강한 브라질 등으로 옮겨간다. 그러면서 마피아의 활동무대가 전 세계로 확대될 뿐만 아니라 조직화되고 있는 모습들을 잘 보여준다.
범죄조직의 대명사로 지칭되는 야쿠자의 나라 일본도 빼놓을 수 없다. 야쿠자는 매춘과 도박으로 세력을 키워왔지만 지금은 태평양지역의 합법 경제에 파고들었다. 뿐만 아니라 야쿠자는 조직원 부족 문제를 중국 갱단에 하청주는 방식으로 해결하고 있다.
이야기의 종착점은 중국이다. 1949년까지 중국은 아편 수출국이었으며 공산당을 포함한 중국의 정치적 운동가들도 범죄조직의 자금을 지원받은 경험이 있다. 모조품 제조에서는 최고의 기술과 시장을 갖고 있는 중국의 감옥에는 이미 마약 중독자들이 넘쳐나고 있다. 그런 중국의 넘치는 잉여노동력이 전 세계로 속속 스며들고 있다. 저자는 따라서 중국을 보면 마피아 세계의 미래가 보인다고 결론내린다.
그는 지난 20년 동안 자유화된 글로벌 금융시장이 마피아의 세력을 크게 키웠다고 주장한다. 사이버를 이용한 금융범죄의 규모와 폭까지 키워가고 있는 마피아들이 케이만,브리티시버진제도 등을 이용해 합법적으로 돈세탁을 하면서 점점 교묘해지고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변칙적 금융거래를 단시간에 틀어막을 능력을 가진 서방세계가 이들의 현금 흐름을 차단하는 것이 국제 범죄집단을 단속하는 가장 성공적인 방법이라고 말한다.
마약의 합법화도 하나의 대안이라고 주장한다. 유엔은 이미 조직범죄 활동비의 70%가 마약에서 나온다는 추정치를 내놓았다. 1920~30년대 미국은 금주정책을 폈지만 미국보다 몇 년 앞서 금주정책을 포기한 캐나다의 불법 상품이 대거 유입되는 바람에 '시그램'을 세계 최대 주류회사로 키운 일밖에 다른 효과는 없었다는 전례를 들면서 마약을 합법화하는 것만이 마피아에 치명타를 가할 수 있다고 말한다.
이 책을 읽으면서 정말 부러웠던 것은 이런 수준 높은 탐사보도 책을 내놓을 수 있는 그들의 능력이다. 영국 BBC방송 기자인 저자는 2004년 5월부터 3년간 수많은 나라를 현지 조사하면서 300여차례의 인터뷰를 가졌다고 한다. 그런 노력을 뒷받침하는 시스템이 있기에 맥마피아를 주제로 뛰어난 르포를 완성할 수 있었을 것이다. 나는 560쪽이나 되는 이 책을 읽는 내내 왜 우리는 이런 책을 펴내지 못하는가를 자책할 수밖에 없었다.
한기호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