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원순 <논설위원 huhws@hankyung.com>

뭄바이 테러사건에 세계가 또 한번 경악했다. 사건은 이제 인도ㆍ파키스탄 간 분쟁으로 비화되고 있다. 미국도 개입하면서 오바마식 '새로운 실용협력외교'의 첫 과제가 될 것이라 한다. 미국의 대북한ㆍ한반도 정책에까지도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사안이다.

뭄바이 테러를 접하면서 9ㆍ11 때 미국방송에서 나온 말이 생각났다. '로테크 하이컨셉트(lowtech highconcept)'이다. 미국의 상징물 같았던 건물이 박살나고 수천명의 사상자가 나온 상황을 압축한 표현이었다. 하이테크(hightech)시대에 대한 반성도 담긴 조어였다. 테러범은 단연 단검 한 자루로 조종실로 침투했다. 이게 로테크(저급 기술)다. 결코 고급기술,첨단장비가 아니다. 갓 이륙해 연료가 가득찬 비행기 자체가 무기였다. 비행기를 45도로 비틀어 더 많은 층과 충돌한 것,9월11일이라는 날짜,출근시간대 전 세계가 지켜보게 한 것 따위는 하이컨셉트(수준 높은 개념)였다.

뭄바이 사건도 이 첨단기술 시대에서 보면 어이가 없다. 청년 10명은 조그만 보트로 대도시에 진입했다. 무기는 재래식 소총과 수류탄.신분은 말레이시아 유학생으로 위장됐다. 영락없는 로테크다. 최고급 호텔의 금속탐지기는 효과를 못 냈다. 시대는 우주공간에서 지상의 어떤 곳까지도 손바닥보듯 들여다 볼수 있고 가히 모든 교신이 감청된다. 하이테크의 일상화다. 그럼에도 로테크는 이를 뚫는다.

금융과 경제도 마찬가지다. 이전엔 돈이 많이 모자라면 셋집을 살고,조금 모자라면 능력내에서 은행 돈을 빌려 집을 샀다. 로테크시대 생존법,로테크형 재테크다. 그런데 모기지 기법이 나왔고 방법은 급속도로 응용됐다. 모기지 채권은 변형과 이종을 거치며 거듭 진화됐다. 전문 종사자가 아니면 이해도 힘든 상품이 허다하다. 하이테크 기법은 성공한 듯했다. 분에 넘치는 주택을 쉽게 살 수 있었고 관련 업계는 황제 같은 부(富)도 누렸다.

어디 주택금융뿐인가. 선물과 파생거래는 하이테크의 급물결을 탔다. ELF,ELW,ELS… 이름만으로도 어지러운 상품모델들이 국내외 시장과 뒤얽히면서 시장은 시작도 끝도 없다. 밤낮이 따로 없는 고등거래에 우리네 개미들은 갑자기 동참했다. 외환과 연계된 하이테크 시스템은 더 찬란하다. 키코만 해도 중소기업들이 두려움 없이 덤빈 하이테크의 신세계였다. 상품을 설계한 사람 외에는 이해도 제대로 못할 복잡한 파생상품,과도한 레버리지 기법이 하이테크의 경계를 확장했다.

하이테크의 아성은 정말로 신천지를 열까. 기본기로 무장한 로테크를 따돌릴까. 그 답을 지금 우리는 목도하고 있다. 위기가 심화될수록 경제에서도 로테크의 중요성을 다시 보게 된다.

경제의 로테크야말로 별 게 아니다. 근검저축,안전자산이 기본이다. 주식투자라면 우량종목에 정석투자하는 것일 테고,부동산이라면 집과 꼭 필요한 사업장 위주의 안정적인 투자,적정 수준의 현금확보 정도 아닐까. 경제지식을 더 얻고 그를 바탕으로 지혜를 갖는 것은 여기에 붙는 하이컨셉트이겠다. 정부도 자통법이다 뭐다 해서 하이테크 세계로 앞서 달릴 일만은 아니다. 개인과 중소기업들은 가급적 로테크 기술을 다지도록 유도해야 한다. 피할 수 없이 다가온 하이테크 시대에 로테크의 의미를 되새겨보는 것,그것은 기본을 되찾자는 얘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