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문표 한국농촌공사 사장(62)은 요즘 시쳇말로 '떴다'.이명박 대통령이 지난 2일 국무회의에서 "농촌공사가 공기업 구조조정의 모범사례"라고 언급하면서 세간의 관심을 한 몸에 받고 있다. 17대 국회의원 출신으로 농촌공사 사장에 취임한 게 지난 9월17일.석 달도 채 안 되는 시간에 공기업 구조조정의 전도사로 떠오른 홍 사장을 4일 만났다.
그의 첫마디는 "사람 자르는 게 기분 좋은 일은 아니지 않느냐"였다. 공기업 개혁을 위해서는 구조조정이 필요하지만 막상 제 식구를 퇴출시키는 결정을 내리기까지 겪었던 마음고생이 그만큼 심했다는 얘기다.
"공기업은 적당히 하면 되는 곳이란 고정관념이 뿌리 깊게 박힌 곳이잖아요. 그런 생각을 갖고 있는 사람들에게 구조조정하자는 말을 꺼내는 것 자체가 쉽지 않았죠.더군다나 전체 직원의 15% 이상을 자르는 일이라면요. "
사실 그는 농촌공사 사장에 임명된 직후 "조용히 지내도 될 자리"라는 생각도 잠시나마 했다고 한다. 하지만 취임 직후 내린 판단은 '구조조정 없이는 미래가 없는 조직'이란 것이었다. 그래서 그는 취임하자마자 임직원들에게 "현실을 직시하자"고 말했다. 공기업이라고 마냥 영원할 수 없고 경쟁력이 뒤처지는 곳은 언젠가는 다른 기관에 통폐합되거나 아예 없어질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밤을 새워가며 노동조합과 임직원들을 만나 설득 작업을 벌인 것도 이때부터였다. 지방 각지에 있는 공사 직원들도 틈나는 대로 찾아갔다. 그러기를 3개월여.마침내 설득작업은 지난달 25일 빛을 발했다. 2011년까지 현 정원(5912명)의 15%인 844명을 줄이자는 홍 사장의 제안에 노조가 동의한 것.아울러 노조는 올해 임금인상분을 자진 반납하고 2급 이상 간부들은 추가로 급여의 10%를 반납,총 51억원의 위로금을 조성해 퇴출 직원들에게 주는 '고통분담'하자는 데도 뜻을 같이했다.
"전 임직원이 월급의 일부를 반납해 구조조정되는 직원들에게 위로금으로 준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니잖습니까. 대통령도 국무회의 전날(1일) 직접 전화해서 대뜸 '진짜냐'라고 묻더라고요. "
홍 사장은 구조조정에 이어 요즘에는 일자리 창출에 전력을 기울이고 있다. 경제위기 상황에서 주어진 예산을 조금이라도 아껴 일자리를 만드는 게 공기업이 해야 할 역할이라는 생각에서다. 이를 위해 그는 총 600억원의 예산이 지원된 전국 304개 저수지 준설공사를 통해 21만개의 일자리를 만드는 사업을 추진 중이다.
"국민에게 봉사하지 않는 공기업은 존재할 이유가 없죠." 바람직한 공기업상을 묻는 질문에 대한 홍 사장의 답이다.
이태명 기자 chihir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