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선박 발주량 사상 최저…일본은 '수주 제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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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락슨 지난달 통계 발표
선박금융시장 위축 등 영향
장기화땐 중소 조선사 큰 타격
지난달 세계 선박 발주량이 사상 최저 수준으로 급감했다. 글로벌 금융경색으로 선박금융 시장이 얼어붙었기 때문이다. 경기침체로 물동량이 줄어들면서 해운운임이 큰 폭으로 하락한 것도 선박 수요를 줄인 요인이다. 조선업체들은 이번 달에도 추가 수주가 힘들 것으로 보고 있다. 수주 감소가 장기화할 경우 자금난에 시달리고 있는 중소 조선사들의 타격이 더욱 커질 것으로 우려된다.
◆쪼그라든 선박발주
4일 조선·해운 시황분석 전문기관인 클락슨에 따르면 지난달 전 세계 선박 발주량은 28만4000CGT(보정총톤수)로 집계됐다. 클락슨이 홈페이지를 통해 공개하는 1996년 이후 수치 가운데 가장 낮은 수준이다. 1년 전(572만CGT)에 비해서는 20분의 1가량으로 급감했다.
올 들어 11월 말까지 누적 발주량은 3886만CGT로 작년 연간 발주량(8682만CGT)의 40% 수준에 그쳤다. 조선협회 관계자는 "12월에도 신규 발주는 거의 없을 것으로 보여 올해 발주시장은 작년의 절반 수준을 밑돌 것"이라고 전망했다.
주요 선박건조 국가 중 일본이 가장 부진했다. 일본 조선업체들은 지난 한 달 동안 단 한 건의 수주도 따내지 못했다. 최근 10년 새 처음있는 일이다. 중국의 수주량도 10만4000CGT로 2002년 6월(7만5000CGT) 이후 6년5개월 만에 최저치를 기록했다. 한국이 그나마 전체 발주 물량의 절반가량을 쓸어 오긴 했지만 작년 이맘때에 비해서는 턱없이 부족한 수준이다.
이처럼 선박 발주가 쪼그라든 가장 큰 원인은 선박금융 시장이 위축됐기 때문이다. 우량 선주(船主)들도 전체 배값의 20%가량만 자기 돈을 쓸 정도로 선박시장은 금융에 대한 의존도가 높다. 전 세계 금융회사들이 동시에 자금난을 겪으면서 일반대출에 비해 떼일 위험이 상대적으로 높은 선수금환급보증(RG)을 꺼리고 있는 것도 선박시장을 얼어붙게 만든 요인이다.
해운운임도 급락했다. 건화물선 시황을 나타내는 발틱운임지수(BDI)는 이달 들어 600선으로 곤두박질쳤다. 1만선을 웃돌던 지난 5월에 비해 6개월 만에 10분의 1 이하로 떨어졌다. 해운회사들이 배를 지어봐야 수익을 올릴 수 없어 발주를 미루는 것이다.
◆존폐 기로에 선 중소 조선사
발주량 감소는 규모가 작은 조선사부터 타격을 입힌다. 중소 조선사는 이제 막 조선업에 뛰어든 만큼 쌓아놓은 자금이 없다. 새로운 주문에서 나온 선수금으로 조선소 건설과 선박 건조를 동시에 진행하기 때문에 신규 수주가 막히면 조선소 전체가 멈출 수밖에 없는 구조다.
대형 조선사도 신규 수주가 거의 없지만 내부유보금이 많아 당장 위기에 빠지지는 않는다. 현대중공업은 현금성 자산이 4조원을 넘는다. 같은 울타리에 있는 현대미포조선과 현대삼호중공업을 합칠 경우 7조5000억원에 달한다. 삼성중공업과 대우조선해양도 조단위의 유보금을 쌓아뒀다.
조선시장이 얼어붙으면서 배값이 빠르게 떨어지고 있는 것도 중소 조선사들엔 큰 부담이다. 기존 발주 물량을 아예 취소해 버리는 선주들이 늘어나기 때문이다. 클락슨에 따르면 지난달 초대형유조선(VLCC) 가격지수는 152포인트로 전달에 비해 8포인트 급락했다. 월간 하락폭으로는 2003년 이후 최대다.
선수금을 받는 구조도 중소 조선사가 불리하다. 조선업체 관계자는 "대형 조선사는 배를 짓기 전에 이미 40%가량의 대금을 받아놓기 때문에 선주들이 섣불리 건조계약을 취소하기 힘들지만 중소 조선소는 나중에 목돈을 받는 구조여서 여차하면 손을 털 확률이 높다"고 설명했다. 최근엔 거의 성사 단계에 와 있던 계약이 어그러지는 사례도 빈발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중소 조선사가 운영난을 겪을 경우 은행 보험 등 금융권으로도 불똥이 튀게 된다. 배를 완공하지 못하면 여기에 보증(RG)을 섰던 은행들이 고스란히 물어줘야 한다. RG와 유사한 'RG보험'을 판매한 보험회사들도 좌불안석이다. 국내 보험회사들이 판 RG보험 규모는 1조원을 훌쩍 넘어선 것으로 알려졌다. 증권업계 관계자는 "불황이 길어질수록 조선업체간 양극화가 심화될 가능성이 높다"고 내다봤다.
안재석 기자 yagoo@hankyung.com
선박금융시장 위축 등 영향
장기화땐 중소 조선사 큰 타격
지난달 세계 선박 발주량이 사상 최저 수준으로 급감했다. 글로벌 금융경색으로 선박금융 시장이 얼어붙었기 때문이다. 경기침체로 물동량이 줄어들면서 해운운임이 큰 폭으로 하락한 것도 선박 수요를 줄인 요인이다. 조선업체들은 이번 달에도 추가 수주가 힘들 것으로 보고 있다. 수주 감소가 장기화할 경우 자금난에 시달리고 있는 중소 조선사들의 타격이 더욱 커질 것으로 우려된다.
◆쪼그라든 선박발주
4일 조선·해운 시황분석 전문기관인 클락슨에 따르면 지난달 전 세계 선박 발주량은 28만4000CGT(보정총톤수)로 집계됐다. 클락슨이 홈페이지를 통해 공개하는 1996년 이후 수치 가운데 가장 낮은 수준이다. 1년 전(572만CGT)에 비해서는 20분의 1가량으로 급감했다.
올 들어 11월 말까지 누적 발주량은 3886만CGT로 작년 연간 발주량(8682만CGT)의 40% 수준에 그쳤다. 조선협회 관계자는 "12월에도 신규 발주는 거의 없을 것으로 보여 올해 발주시장은 작년의 절반 수준을 밑돌 것"이라고 전망했다.
주요 선박건조 국가 중 일본이 가장 부진했다. 일본 조선업체들은 지난 한 달 동안 단 한 건의 수주도 따내지 못했다. 최근 10년 새 처음있는 일이다. 중국의 수주량도 10만4000CGT로 2002년 6월(7만5000CGT) 이후 6년5개월 만에 최저치를 기록했다. 한국이 그나마 전체 발주 물량의 절반가량을 쓸어 오긴 했지만 작년 이맘때에 비해서는 턱없이 부족한 수준이다.
이처럼 선박 발주가 쪼그라든 가장 큰 원인은 선박금융 시장이 위축됐기 때문이다. 우량 선주(船主)들도 전체 배값의 20%가량만 자기 돈을 쓸 정도로 선박시장은 금융에 대한 의존도가 높다. 전 세계 금융회사들이 동시에 자금난을 겪으면서 일반대출에 비해 떼일 위험이 상대적으로 높은 선수금환급보증(RG)을 꺼리고 있는 것도 선박시장을 얼어붙게 만든 요인이다.
해운운임도 급락했다. 건화물선 시황을 나타내는 발틱운임지수(BDI)는 이달 들어 600선으로 곤두박질쳤다. 1만선을 웃돌던 지난 5월에 비해 6개월 만에 10분의 1 이하로 떨어졌다. 해운회사들이 배를 지어봐야 수익을 올릴 수 없어 발주를 미루는 것이다.
◆존폐 기로에 선 중소 조선사
발주량 감소는 규모가 작은 조선사부터 타격을 입힌다. 중소 조선사는 이제 막 조선업에 뛰어든 만큼 쌓아놓은 자금이 없다. 새로운 주문에서 나온 선수금으로 조선소 건설과 선박 건조를 동시에 진행하기 때문에 신규 수주가 막히면 조선소 전체가 멈출 수밖에 없는 구조다.
대형 조선사도 신규 수주가 거의 없지만 내부유보금이 많아 당장 위기에 빠지지는 않는다. 현대중공업은 현금성 자산이 4조원을 넘는다. 같은 울타리에 있는 현대미포조선과 현대삼호중공업을 합칠 경우 7조5000억원에 달한다. 삼성중공업과 대우조선해양도 조단위의 유보금을 쌓아뒀다.
조선시장이 얼어붙으면서 배값이 빠르게 떨어지고 있는 것도 중소 조선사들엔 큰 부담이다. 기존 발주 물량을 아예 취소해 버리는 선주들이 늘어나기 때문이다. 클락슨에 따르면 지난달 초대형유조선(VLCC) 가격지수는 152포인트로 전달에 비해 8포인트 급락했다. 월간 하락폭으로는 2003년 이후 최대다.
선수금을 받는 구조도 중소 조선사가 불리하다. 조선업체 관계자는 "대형 조선사는 배를 짓기 전에 이미 40%가량의 대금을 받아놓기 때문에 선주들이 섣불리 건조계약을 취소하기 힘들지만 중소 조선소는 나중에 목돈을 받는 구조여서 여차하면 손을 털 확률이 높다"고 설명했다. 최근엔 거의 성사 단계에 와 있던 계약이 어그러지는 사례도 빈발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중소 조선사가 운영난을 겪을 경우 은행 보험 등 금융권으로도 불똥이 튀게 된다. 배를 완공하지 못하면 여기에 보증(RG)을 섰던 은행들이 고스란히 물어줘야 한다. RG와 유사한 'RG보험'을 판매한 보험회사들도 좌불안석이다. 국내 보험회사들이 판 RG보험 규모는 1조원을 훌쩍 넘어선 것으로 알려졌다. 증권업계 관계자는 "불황이 길어질수록 조선업체간 양극화가 심화될 가능성이 높다"고 내다봤다.
안재석 기자 yago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