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한 사람에게 1000원이 있다. 그에게 1000원을 투자해서 2000원을 벌 수 있는 기회를 설명해줬다. 실패하면 500원을 잃을 수 있다는 말도 해줬다. 그는 어떻게 할까. 보통의 경우 투자하는 쪽으로 결정한다. 금액을 더 올려보자.이번에는 1억원이다. 잘 되면 2억원을 벌지만 실패하면 5000만원을 잃는다. 이럴 땐 어떨까. 그는 한참이나 망설인다. 왜? 이에 대한 답을 연구한 사람이 있다. 유태인 심리학자 캐네먼과 트베르스키는 '사람은 이해하고 허락할 수 있는 정도의 손실이라면 기꺼이 투자를 하든가 도박을 한다'고 했다. 감당할 만한 손실을 알 수만 있어도 도전한다는 얘기다.

#2. 어느 지역에 질병이 창궐해 600명이 죽을 것이라고 가정해보자.A계획은 200명을 구할 수 있고,B계획은 모든 사람을 구할 수 있는 33%와 아무도 구할 수 없는 67%를 가지고 있다. 어떤 계획을 선택하겠는가. 리스크가 없는 A계획을 선택할 것이다. C계획은 400명을 죽게 하고,D계획은 모두 죽일 67%의 확률과 아무도 죽지 않을 33%의 가능성이 있다. 이 실험에서는 78%가 D계획을 선택했다. 상황은 같지만 관점이 다른 것이다. 이처럼 같은 상황도 다르게 받아들이는 원리를 '손실기피'(Loss Aversion)라고 한다. 사람들은 불확실성보다 손실을 더 싫어한다

<리스크>는 이 같은 인간의 심리를 역사적인 사건과 함께 조명한 책이다. 위험과 기회,미래가 공존하는 리스크의 세계.르네상스와 종교개혁에서 비롯된 리스크 정복의 역사,확률이론의 기초를 세운 프랑스의 삼총사,잡화점 주인이 제시한 통계학의 핵심 개념,의사결정과 선택의 확신을 세워준 영국 과학자의 적수,컴퓨터의 한계 등 흥미로운 얘기들이 소설처럼 펼쳐진다. 방대한 자료와 뛰어난 통찰로 에드윈부즈상과 라이트메모리얼상,아서켈프상 등을 휩쓸었다. 저자는 번스타인 맥컬래이에서 수십억달러를 운용하는 자산관리 전문가. 그는 '손실과 위기를 관리하는 신의 기술이 곧 리스크 관리'라고 표현한다. 사람들은 아주 먼 옛날부터 '위험'을 줄이는 방법을 연구했다. 사냥할 때도 그랬고 잠 잘 때나 집을 지을 때도 그랬다. '위험'은 '생존'과 직결되는 것이었다. 현대사회에서는 경우의 수가 더 늘어났고 위험관리 기법도 더욱 복잡해졌다.


저자에 따르면 르네상스 시대에 이르러서야 리스크에 대한 연구가 진지하게 시작됐다. 1654년 어느 날 도박과 수학에 관심이 많았던 프랑스 귀족 슈발리에 드 메레는 유명한 수학자 블래즈 파스칼에게 퍼즐 하나를 풀어보라고 했다. 운에 맡기는 승부 도중에 한 사람이 상대방보다 앞선 상황에서 게임을 중단하면 판돈을 어떻게 분배해야 공평한가를 묻는 것이었다.

고민하던 파스칼은 법률가이자 수학자였던 친구 피에르 드 페르마에게 도움을 청했다. 그리고 두 사람의 연구 결과 놀라운 발견이 이뤄졌다. '확률이론'이 탄생한 것이다. 이것은 숫자의 도움으로 결정을 내리고 미래를 예견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닫게 해 준 최초의 '사건'이었다. 이 때부터 유럽의 발전과 혁신이 급물살을 탔다.

리스크(risk)라는 단어는 '뱃심 좋게 도전하다'는 뜻의 초기 이탈리어에서 유래됐다고 한다. 이런 의미에서 본다면 리스크는 운명이 아니라 선택이다. 선택은 도전하는 사람들의 것.상황이 어렵다고 피하거나 숨는 것이 아니라 기회를 포착하고 도전하는 것이 바로 리스크다.

이 책을 읽고 나면 지금의 불황과 패닉이 또다른 호황의 시작점이라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예나 지금이나 뱃심 좋게 도전하는 사람이 세상을 지배한다.

고두현 기자 kd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