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엔 선물 사들이며 대규모 프로그램 매수세 촉발 반등장 이끌어

개인투자자가 선물과 현물시장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과시하고 있다. 연말을 앞두고 외국인의 매매 공백 현상이 완연한 데다 기관도 소극적인 매매로 일관하면서 증시가 사실상 개인의 독무대 장세를 펼치는 양상이다.

특히 개인은 선물 매매를 통해 프로그램 차익거래를 일으켜 현물시장을 쥐락펴락하는 '왝더독(wag the dog)' 장세를 주도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풍부한 자금력과 전문가 수준의 분석력을 갖춘 '프로 개인'들이 증시 변동성을 적극 활용해 수익을 노리고 있다고 진단했다.

◆현ㆍ선물 시장 주무르는 개인

5일 코스피지수는 뉴욕 증시 하락에도 불구하고 1% 이상 상승 출발했다. 개장과 동시에 개인이 코스피200지수 선물을 2000계약 정도 순매수하면서 프로그램 차익거래를 유발시킨 결과다. 외국인 매물이 흘러나왔지만 차익거래 매수세가 이를 가뿐히 소화했다.

개인이 현물시장에서 쏟아낸 매물로 지수가 한때 강보합으로 밀렸으나 개인이 선물을 3673억원(5457계약)이나 사들여 차익거래 순매수 규모가 지난달 12일(3483억원) 이후 최대인 3231억원까지 확대되면서 지수 상승을 이끌었다.

결국 코스피지수는 21.59포인트(2.14%) 오른 1028.13에 장을 마쳐 닷새 만에 상승했다. 외국인은 이날 선물시장에서 1684억원을 순매도했지만 현물 주식시장에선 매수ㆍ매도 규모가 비슷했다.

이선엽 굿모닝신한증권 연구원은 "이날 기관이 2424억원 순매수를 보였지만 차익거래를 제외하면 수백억원의 순매도를 나타낸 셈"이라며 "외국인의 거래도 거의 영향력을 발휘하지 못해 개인이 선물로 현물을 좌지우지한 전형적인 왝더독 장세였다"고 말했다.

개인은 전날까지 이틀 동안은 선물을 처분하면서 차익거래 매도를 불러와 증시를 압박했다. 사흘 연속 개인이 왝더독 장세의 주연이 된 것이다. 앞서 지난달 27일부터 이달 1일까지 사흘 동안에도 개인은 선물 플레이로 차익거래를 주물렀다.

이승재 대신증권 연구원은 "개인의 선물 매매와 차익거래의 상관관계가 강화되고 있다"며 "상관관계 지수가 지난달 27일 이전엔 0.2 수준이었지만 최근엔 0.7로 높아졌다"고 설명했다.

◆프로 개인투자자가 주도

이처럼 막강한 영향력을 과시하고 있는 개인의 움직임은 프로 투자자들이 주도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원상필 동양종금증권 연구원은 "전날 국내 증시가 불안한 장세를 보인 데다 뉴욕 증시가 크게 빠져 이날 증시가 하락할 것이란 전망이 우세했지만 프로 투자자들은 연말 휴가시즌을 맞아 외국인 매물이 많지 않을 것이란 판단 등으로 사흘 만에 선물을 대거 사들였다"고 분석했다.

원 연구원은 "이날 선물시장에선 프로 투자자들이 200계약씩 매수 주문을 던지면 일반 개인투자자 수백명이 1~2계약씩 매수 주문을 잇달아 내는 모습이 자주 목격됐다"며 "프로 투자자들을 따라 추종 매매하는 개인이 늘고 있다"고 전했다.

개인은 선물 매매와 현물 매매를 연계하는 '래깅 차익거래' 전략도 구사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일반적인 차익거래는 현물과 선물을 동시에 주문해 위험 없이 수익을 거두지만 래깅 차익거래는 선물을 먼저 팔아 지수를 끌어내린 뒤 현물을 나중에 저가에 사거나,반대로 선물을 사서 현물을 팔 기회를 만드는 것이다.

문주현 현대증권 연구원은 "일반 차익거래는 1000억원을 투자하면 하루에 200만~300만원의 수익을 올리는 데 만족해야 하지만 래깅 차익거래는 위험을 감수하는 대신 더 많은 수익을 노릴 수 있다"며 "일부 개인이 이 전략을 구사하는 움직임이 감지된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개인이 선물시장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는 것은 전반적으로 거래가 위축된 상황에서 나타난 일시적인 현상이라는 주장도 나왔다. 최창규 우리투자증권 연구원은 "개인의 선물 거래 방향성과 시장의 등락이 우연히 일치할 수 있다"며 "얼마동안 그런 사례가 나타났다고 해서 개인이 시장을 뒤흔든다고까지 말하기는 어렵다"고 주장했다.

최 연구원은 "증시가 좁은 박스권에서 맴도는 장세가 이어지면서 그런 우연이 자주 벌어진 것으로 봐야 한다"며 "주가가 상승 또는 하락으로 크게 움직이면 개인은 선물 투자에서 큰 손실을 볼 수 있다"고 지적했다.

장경영 기자 longru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