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여 납품업체 모두 빚더미에

지난해 12월 부도를 맞은 경기도 안산시 단원구 원시동에 있는 컴퓨터용 PCB전문업체 Y전자 마당에서 작업복 차림의 직원들이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공장 내부에서는 간간이 조업이 이뤄지고 있었지만 한산해 보였다. 그 중 몇몇은 모여 앉아 잡담을 나누는 등 무료함을 이기지 못하는 모습이었다.

현재 Y전자 공장에는 부도 전 Y전자에 입주해 부품을 생산·납품하던 입주업체들 사무실이 6곳 있다. Y전자 대표는 총 60여개 납품 업체에 물품대금을 지급하지 않고 지난해 12월 부도와 동시에 잠적했다. Y전자가 부도 직전 평소 공급량의 몇 배를 주문한 뒤 모두 팔아치우고 돈을 주지 않아 납품업체들은 모두 빚더미에 올라앉았다. 이들이 Y전자에서 받아야 할 돈은 총 60억원가량이다.

채권단을 구성해 공동 대응하고 있지만 올해 초부터 진행된 경매는 벌써 세 번째 유찰돼 언제 돈을 받을 수 있을지 막막할 뿐이다. 채권단 대표인 S사의 P 재경팀 부장은 "60여개 벤더(협력업체) 중 6곳의 입주업체들은 미수금이 2억~3억원씩은 된다"며 "우리 회사만 해도 물린 돈이 3억원이 넘는다"고 말했다.

현재 Y전자 공장에 있는 생산설비는 Y전자와 장기입주계약을 맺고 들어온 입주업체들의 소유다. 다른 곳으로 옮겨가려고 해도 이사비용만 약 1억~2억원이 든다. 또 경락 후 은행채무를 변제하고 돈이 남을 경우 입주자만 경락대금배당권을 인정받기 때문에 이사할 비용이라도 건지려면 버티고 있어야 한다. 결국 경매에 낙찰되기만을 하염없이 기다리고 있는 상황이다. 게다가 Y전자가 부도 전 수도,전기요금을 1억7000만원이나 연체해 채권단은 울며 겨자먹기로 그 돈까지 갚았다. P 부장은 "수도,전기요금 등 공과금이 매월 약 4000만원인데 채권단이 내고 있다"고 말했다.

연평균 120억~180억원의 매출을 올리며 잘나가던 Y전자는 지난해 6월께부터 기울기 시작했다. P 부장은 "보통 한 달짜리 어음을 끊어주던 Y전자가 3개월,4개월짜리 등 결제일이 긴 어음을 발행할 때만 해도 의심만 했지 심각한 것을 몰랐는데 10월쯤 주문량을 대폭 늘릴 때에야 사태의 심각성을 깨달았다"며 "거래를 끊고 빚을 받아내려 했을 때는 이미 Y전자 사장은 야반도주하듯 종적을 감춰버렸다"고 설명했다. Y전자의 사무실 문은 굳게 잠겨 있었다.

현재 Y전자의 부채는 기업은행에 빚진 120억원을 포함해 다른 은행까지 합하면 180억원 수준이다. 계속 유찰되면서 경매가는 감정가 대비 50% 미만으로 떨어졌다. P 부장은 "공장이 팔려도 매매대금을 선순위 채권자인 은행이 가져가 버리면 돈 나올데가 없다"며 "우리(S사)는 Y전자 거래가 매출의 10% 이하라 버틴거지 10곳이 넘는 업체가 쓰러졌다"고 하소연했다.

더구나 최근 경기 탓에 입찰자도 계속 줄어 이달 경매에는 입찰자가 있을지도 의문이다. P 부장은 "빚 받을 생각은 접은 것이나 마찬가지"라며 "아예 한 3년 계속 유찰돼 여기서 임대료나 내지 않고 있었으면 한다"고 말했다. 그는 "반월·시화 경매건에 얽힌 업체들은 다 사정이 매한가지"라며 "경기가 안좋은 것은 알지만 불황이 장기화되면 부품업체들의 연쇄도산 사태가 생길 수도 있다"고 씁쓸해 했다.

임기훈 기자 shagger@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