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수디자인 상품전' 대통령 賞 김승민 삼성물산 실장

"세계적으로 각광받고 있는 일본의 건축양식인 '젠 스타일'처럼 한국의 전통미를 살린 주택디자인이 글로벌 디자인 상품으로 뜰 수 있습니다. "

지난달 28일 지식경제부가 주최하고 한국디자인진흥원이 주관한 '2008 우수디자인 상품전(GD)' 행사에서 한국형 욕실 디자인으로 대통령상을 받은 삼성물산 건설부문의 김승민 디자인 실장(49).그는 7일 기자와 만난 자리에서 "국내 디자이너들이 아직도 서양식을 모범답안으로 여기는 생각을 없애야 한다"고 강조했다. 삼성물산 건설부문의 대표 브랜드인 '래미안' 아파트의 디자인을 책임지고 있는 김 실장은 올해 최우수 디자이너에게 주는 지식경제부 장관 표창까지 받았다.

1년여의 개발 기간을 거쳐 완성된 한국형 욕실은 크게 목욕과 반신욕을 할 수 있는 큰 욕조와 좌석이 달려 있는 작은 크기의 세족(洗足)용 욕조로 구성된다. 허리를 많이 구부리지 않고도 발을 닦을 수 있고 좌석에서 가족끼리 서로 등을 밀어줄 수도 있도록 설계됐다. 욕실에는 노인들이 의자에 앉아 샤워를 할 수 있는 샤워부스도 포함돼 있다. 김 실장은 "외출 했다가 돌아온 뒤 발을 닦고 가끔씩 때를 미는 한국인의 생활 습관을 최대한 반영했다"고 설명했다. 여백의 미와 직선을 강조한 일본의 젠 스타일과는 다르게 한복의 옷고름이나 건축물 처마에서 영감을 얻은 부드러운 곡선을 살린 디자인도 한국형임을 강조하는 요소다. 이 욕실은 기존 아파트에도 적용할 수 있고 앞으로 지어지는 래미안에도 일부 포함될 예정이다.

김 실장이 한국형 욕실을 개발하게 된데에는 삼성물산 건설부문 경영진이 적극 추진하고 있는 '코리안 모던(Korean Modern)디자인' 개발 방침이 큰 힘이 됐다. 그는 "2007년 홍익대 산업디자인학과와 여론조사를 해보니 국내 주택 욕실이 서양인의 생활 양식에 맞게 만들어져 있는 데도 많은 사람이 불편함을 모를 정도로 익숙해져 있다는 사실에 놀랐다"며 "전통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하자는 의미가 담긴 코리안 모던 디자인 방침에 맞춰 개발에 착수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김 실장은 래미안에 살면서 생활 속에서 느끼는 불편함을 최대한 디자인에 반영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기도 하다. 어린이들을 위한 낮은 도어록 등은 그런 아이디어의 산물이다. 김 실장은 "우리집은 래미안의 새로운 디자인 개발을 위한 실험가옥"이라며 "이웃들이 우리집에 놀러왔다가 자신들의 집도 똑같이 바꿔달라고 관리소에 요청하는 웃지 못할 일도 많았다"고 말했다.

그는 국내 최고의 디자이너답게 새롭게 바뀐 한국경제신문의 제호에 대해서도 조언을 잊지 않았다. 김 실장은 "차분하면서도 힘이 넘쳐보이는 푸른 색상과 눈에 쉽게 들어오는 시원한 편집디자인이 신문의 신뢰도를 높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최근 높아진 주택 디자인에 관한 관심에 대해 김 실장은 정부와 업계 선도기업들의 '철학세우기'를 강조했다. 디자인에 대한 인식이 많이 달라지기는 했지만 외관은 유럽식,인테리어는 일본식을 적용하는 등 국적불명의 디자인들이 많다는 것.그는 "일본과 유럽의 경우에서 알 수 있듯 고유의 디자인이 만들 수 있는 부가가치는 크다"며 "한국형 디자인을 국가 브랜드로 키워나가기 위해서는 한국적 미학에 대한 정부와 업계 선도기업들의 확고하면서도 구체적인 방향 설정이 절실하다"고 강조했다.

글=임기훈/사진=강은구 기자 shagger@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