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에 다니고 있는 서른 여섯살 김 모 과장(1973년생).2006년 초 확정기여형(DC형)퇴직연금에 가입해 지난해 말까지 모두 2030만원을 적립했다. 1750만원의 원금을 주식 40%,채권 혼합형펀드에 60%를 투자해 280만원의 운용수익을 올렸다.

그러나 올해 들어선 사정이 확 달라졌다. 올해에만 새로 290만원의 적립금을 넣었지만 10월 말 운용손실 402만원을 기록하면서 총 적립금이 1918만원으로 오히려 감소했다. 수익률이 마이너스로 추락하면서 적립액이 원금 이하로 떨어진 것이다.

국내에 퇴직연금제도가 도입된 지 이달로 만 3년이 되는 퇴직연금에 비상이 걸렸다. 최근 금융위기 여파로 증시가 급락하고 채권시장 혼란이 가중되면서 퇴직연금 수익률이 연일 추락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퇴직연금 가운데 확정급여형(DB형)이 아닌 DC형을 선택한 직장인들은 대부분 원금 손실을 보고 있는 상황이다. 직장인에게 '최후의 보루'인 퇴직금마저 까먹고 있는 것이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최근 원금보장 기능이 있는 DB형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다. 특히 DB형 운용에 강한 보험사 퇴직연금 상품에 대한 문의가 늘어나고 있다.

◆DB형이냐,DC형이냐

퇴직연금제도는 DB(Defined Benefit)형과 DC(Defined Contribution)형,그리고 이직 등의 경우에 활용되는 개인퇴직계좌(IRA.Individual Retirement Account) 등 3가지로 나뉜다.

DB형과 DC형은 10년 이상 가입 후 55세 이상이 되면 퇴직연금을 수령한다는 점은 같다. 그러나 DB형은 사전에 확정된 게 근로자가 퇴직 후 받을 연금수준이고,DC형은 기업이 부담할 부담금이라는 점에서 큰 차이가 있다.

즉 DB형은 기업이 모든 책임과 권한을 갖고 운용하는 형태여서 운용실적이 나쁘면 기업이 추가로 부담하고 운영실적이 좋을 땐 부담을 줄일 수 있는 구조다.

반면 근로자가 직접 책임과 권한을 갖고 운용하는 DC형은 운용실적에 대한 부담을 근로자가 100% 져야 한다. 통상 DB형은 매년 임금상승률이 물가상승률보다 높은 기업의 장기 근속자나 퇴직 후 수령할 퇴직금을 사전에 확정짓고자 하는 안전중시형 근로자들이 선호하고 있으며 DC형은 그 반대다.

◆보험사는 대부분 DB


지난 10월 말 기준 금융감독원 통계를 보면 퇴직연금 적립금 규모를 기준으로 DB형이 3조2223억원(66.5%)으로 DC형 1조2905억원(26.6%)보다 많다. 이는 퇴직연금의 경우 수익성보다는 안정성을 선호하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이다. 최근 김원식 건국대 경제학과 교수는 퇴직연금 도입 기업체 300곳의 가입자 875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안정적인 수익률'과 '원금보장 가능성'을 원한다는 대답이 55.3%에 달해 퇴직급여만큼은 안정성을 중시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금융권역별로 보면 보험권에서 이런 현상이 두드러진다. 10월 말 전체 적립금은 4조8466억 원으로 은행과 생명보험사가 시장을 양분하고 있는 가운데 증권은 DB형이 45.2%,DC형이 54.2%로 DC형이 우세하다. 은행의 경우 DB형과 DC형이 각각 54.7%와 33.3%로 DB형이 약간 많은 편이지만 생보의 경우 83.9%가 DB형으로 압도적으로 많다.

최근 DC형보다 DB형의 수익률이 훨씬 안정적으로 나타나면서 생보사의 안정적인 원리금보장형 퇴직연금 상품이 꾸준한 인기를 끌고 있다. 보험사 관계자는 "보험사의 퇴직연금 상품은 퇴직보험운용의 오랜 경험과 전문인력 확보,보험상품으로 장기간 고객관리를 해 온 노하우 등을 기반으로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고 말했다.

김현석 기자 realis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