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일본에선 '행운을 부르는 마법의 말'이란 책이 유행이다. 사토도미오라는 작가가 쓴 에세이집이다. 사방을 둘러봐도 우울한 뉴스만 있는 요즘 이 책의 한 대목이 인상적이다. "나쁜 일이 있을 땐 '아리가토(고맙다)'라고 외쳐라.나쁜 일이 일어나면 나쁜 생각을 하게 된다. 그럼 또 나쁜 일이 생긴다. 하지만 거기서 '고맙다'고 말하면 불행의 사슬은 끊긴다. 반대로 좋은 일이 일어난다. 재난이 굴러 복이 된다. '아리가토'는 마법의 말이다. " 필자는 일본어에서 '아리가토'를 한자로 '有り難う(어려움이 있다)'로 쓰는 게 우연이 아니라고 설명한다.

세계 각국이 마찬가지이지만,한국도 요즘 정말 어려움 투성이다. 금융회사도,기업도,가계도 모두 어렵다. 정부 대응도 시원치 않아 걱정이다. 더 심각한 건 한국 경제에 대한 전망도 비관론 일색이란 것이다. 인터넷에선 한국 경제에 극단적 비관론을 내뱉는 '미네르바'가 '경제 대통령'으로 추앙 받는다. '9월 위기설'이 설(說)로 끝난 게 엊그제인데 또 '내년 3월 위기설'이 나돈다. 그것도 미네르바의 '예언'이란다.

비관론은 언제나 안전(?)하다. 나중에 틀리더라도 그땐 일이 잘 풀린 까닭에 별 문제가 되지 않는다. 오히려 '그때 위기를 예고한 덕분에 피해갈 수 있었다'며 칭찬받기도 한다. 혹 비관론이 현실화되면 '거봐라,그때 위기 가능성을 경고하지 않았는가'라고 큰 소리칠 수도 있다. 정반대로 낙관론은 리스크가 크다. 조금만 빗나가도 욕먹기 십상이다. 자신없는 학자들이나 책임없는 익명의 인터넷 논객들이 비관론을 주로 펴는 건 당연한지도 모른다.

문제는 비관론이 실제로 나쁜 결과를 초래할 가능성이 크다는 점이다. 투자자들이 주가가 더 떨어질 것으로 보고 주식을 팔고,기업들이 환율이 더 뛸 것이라며 달러 사재기를 하면 정말 주가가 떨어지고,환율은 뛴다. '한국 경제는 이제 망할 것'이라고 모든 경제주체들이 생각하고 행동하면 진짜 망해 버린다. 경제야말로 '자기암시 효과'가 확실한 분야다.

이럴 때일수록 희망을 얘기하는 건 어떨까. 우리는 한국 전쟁 이후 최대 국난이라던 'IMF(국제통화기금) 위기'도 이겨냈다. 그 덕분에 대기업과 은행들의 체질은 튼튼해졌다. 세계 6위의 외환보유액도 결코 적은 게 아니다. 당시 위기 극복의 학습효과는 지금 위기를 극복하는 데도 유효하다.

'그땐 한국만 어려웠지만,지금은 전 세계가 어려워 더 심각하다'는 말도 틀린 건 아니지만 역설적으로 우리만 힘든 게 아니란 사실로 위안을 삼을 수도 있다. 전쟁의 폐허에서 출발한 한국 경제는 그동안 수많은 역경에도 결딴나지 않고 세계 13위 경제대국으로 컸다. 이런 나라도 정말 흔치 않다. '위기설'에 너무 떨 필요도 없다. 이헌재 전 부총리는 현직 시절 "예고된 위기는 위기가 아니다"고 말했다. 미리 대비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냥 낙관만 하자는 건 물론 아니다. 막연한 낙관은 무조건적 비관보다 더 위험하다. 다만 모두 비관론에 빠져 어깨 처질 필요는 없다는 얘기다. 이탈리아의 지식인 안토니오 그람시의 말처럼 "이성으로 비관하되 의지로 낙관하자." 경제는 심리다. 건전한 낙관과 긍정적 사고는 때로 마술처럼 좋은 결과를 부른다. 이제 이렇게 한번 외쳐보면 어떨까. "위기야,고맙다. "

도쿄=차병석 chab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