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팀 등 통폐합 부작용 심각

#사례 1. 정보통신부와 방송위원회가 결합해 만들어진 방송통신위원회의 2·3급 국장 8명(외부 영입 2명 제외) 중 7명은 정보통신부 출신이다. 정보통신부 출신 공무원들이 방송위원회 출신 민간인을 제치고 국장 자리를 거의 독식했다. 방송위 출신 한 국장은 자리가 없어 산하 기관장으로 밀려났다. 이를 지켜본 방송위 직원의 10%(15명)가 통폐합 4개월 만에 사표를 냈다. 방송위 출신의 한 직원은 "파워에서 밀리는 만큼 앞으로 진급에서 소외될까 걱정"이라고 말했다.

#사례 2. 지난 9월15일 리먼브러더스 사태 이후 국내 은행들은 달러 구하기가 어려워지면서 심각한 외화 유동성 위기를 맞았다. 하루하루 긴박한 상황이 이어졌지만 정부 대응은 한참 늦게 나왔다. 대부분 선진국들이 10월 초 은행 간 거래 지급보증에 착수했지만 정부는 10월19일이 돼서야 은행 대외채무 지급보증을 발표했다. 정부조직 개편으로 국내 금융을 맡은 금융위원회와 국제금융을 담당하는 기획재정부가 나뉘어지면서 양측 간 의사소통이 제대로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은행 상황을 손금 보듯 읽고 있던 금융위는 "신속히 조치해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재정부는 "대외적으로 경제사정이 나쁘다는 인식을 준다"며 반대했다.

이명박 정부 들어 작은 정부를 지향하면서 정부 부처를 통폐합한 지 10개월이 지났다. 유사 업무가 통폐합된 일부 부처에서는 정책 결정이 빨라지는 등 긍정적인 효과가 나타나고 있다. 그러나 정책 비효율,특정 부처 출신 우대 등 부작용이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다. 물리적 결합은 이뤄졌으나 화학적 결합까지는 아직도 갈길이 멀었다는 방증이다.

◆손발 안맞는 경제부처

부처 통폐합의 부작용이 가장 심각한 곳은 역시 경제부처다. 국내 금융을 담당하는 금융위,국제금융을 관할하는 재정부,금융감독을 맡은 금융감독원으로 나눠지면서 경제위기 상황에 효율적으로 대처하지 못하고 있다. 일사불란하게 대응하기는커녕 자중지란(自中之亂)을 겪으면서 시장의 신뢰를 잃고 있다.

금융위와 금감원 간 조직 갈등은 위험 수위다. 두 조직은 각각 반포(금융위)와 여의도(금감원)로 나뉘었다. 금융위원장과 금감원장도 각각 임명됐다. 금융위는 금감원을 단순한 산하기관으로 여긴다. 옛 금융감독위원회 시절 거의 동반자처럼 움직이던 때와 달라졌다. 1600명 조직의 금감원은 금융회사들에 대한 감독과 검사를 담당하면서 모든 정보를 손에 쥐고 있지만 금감원은 금융위가 요구한 정보만 주고 지시한 일만 한다.

재정부 내에서는 옛 재정경제부 출신과 기획예산처 출신 사이에 감정의 골이 깊다. 예산 기능을 거시정책 부서와 합친 것은 재정부의 정책 조정 기능에 힘이 실리도록 하기 위한 것이었다. 그러나 양측이 일체감조차 갖고 있지 않다는 게 각 부처에 알려지면서 정책 협의 과정에서 재정부를 전혀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게 관료들의 증언이다.

정책 소외 현상이 나타나기도 한다. 교육인적자원부와 과학기술부가 합쳐진 교육과학기술부에서는 과학정책이 뒷전으로 밀리고 있다. 과학자들은 "정권 초기에는 과학을 배려하겠다는 시늉이라도 했지만 지금은 그마저 찾아보기 어렵다"고 불만을 토로한다. 실제 지난 1일 안병만 교과부 장관이 대전 대덕연구단지를 방문하면서 연구원 방문보다 충남대 대학정보공시제 개통식에 많은 시간을 할애,현장 과학자들로부터 반발을 사기도 했다.

◆곳곳서 인사 불만

교과부에선 과학기술부의 기술고시 출신들의 입이 나와 있다. 과학기술부 시절에는 기술고시 출신 공무원들이 우대받고 실·국장급으로 승진하는 경우도 왕왕 있었다. 그러나 조직 통폐합 이후 이들에 대한 '배려'가 예전만 못하기 때문이다. 교육부 출신 인사들은 승진 속도가 불만이다. 과기부 출신들이 같은 기수로 교육부에서 일하는 동기보다 승진이 빨랐다. 교육부 출신들은 과기부 출신 직급을 따라잡기 원한다. 이 같은 갈등으로 인해 새 정부 들어 한 번도 대규모 승진 인사를 하지 못했다.

금융위는 일할 사람이 없다고 아우성이다. 150명의 작은 조직으로 금융위기에 대처하려니 일손이 부족하다. 하지만 지금도 정원 초과 상태라서 인원을 늘릴 수도 없다. 책임감과 전문성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조성근/정재형/박영태 기자 trut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