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말 결산 고환율 공포
파생상품 손실도 겹쳐…정유·해운 등 초비상



'3분기 누적 순외화환산손실 1조2778억원, 작년 영업이익 6368억원, 최근 3년간 영업이익의 합산 금액 1조6000여억원.'

대한한공이 금융감독원에 제출한 올 3분기 실적보고서 내용이다. 장부상이긴 하지만 최근 3년 동안 장사를 해 벌어들인 돈(영업이익)을 올 들어 환율상승으로 9개월 만에 고스란히 날린 셈이다. 대한항공 관계자는 "이대로라면 12월31일 종가 환율로 올 한 해 장사를 평가하면 환산손만 2조원에 육박할 수 있다"며 고민스러워 했다.

연말이 다가오면서 항공,해운 등 외화부채가 많은 기업들의 재무팀에 비상이 걸렸다. 1400원대 후반의 환율이 좀체 내려갈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어서다. 이런 상태로 결산에 들어가면 올해 실적(당기순이익)은 최악의 상황을 맞을 게 뻔하기 때문이다.

◆항공 정유 해운 환율 초비상

우리투자증권은 최근 해운항공 관련 보고서에서 "항공과 해운사는 비행기를 구입하거나 배를 발주하면서 엄청난 외화부채를 안고 있는데 환율상승으로 아직 갚지 않은 부채에 대한 평가손실이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다"며 "3분기 누적 환산손은 각 분기 말 환율을 적용한 규모이지만 올 한 해 실적은 12월 31일 종가로 다시 환산해야 하는데 지금 환율로 환산한다는 것은 업체로선 상상하기조차 싫은 일"이라고 설명했다.

원·달러 환율은 지난해 말 936원에서 올해 3월 말 원·달러 990원,6월 말 1046원,9월 말 1207원 등으로 가파르게 올랐다. 1분기 때는 990원을 기준으로 외화부채를 평가해 손실이 상대적으로 적었다. 하지만 올 한 해 실적을 1400원 대 후반 환율로 다시 계산하게 되면 대규모 당기순손실이 발생→신용도 급락→자금조달 비상의 악순환의 덫에 갇힐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평가손실은 아직 실현되지 않은 미래부채에 대한 평가로 영업외 손실에 곧바로 영향을 주고,결국 당기순손실을 크게 늘리게 된다.

업체들의 파생상품거래도 만만찮은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다. 특히 한진해운은 공격적인 파생상품투자로 3분기 누적 파생상품평가이익은 불과 21억원에 그친 반면 평가손실은 751억원에 이르고 있다.

◆은행도 BIS비율·충당금 걱정

은행도 환율 움직임에 긴장하고 있다. 우선은 국제결제은행(BIS)자기자본비율을 걱정하고 있다. 은행은 원화로도 대출하지만 외화를 빌려야 이를 기업들에 내주고 있는데 환율이 오르게 되면 원화로 환산한 외화대출의 규모가 커지게 된다. 그만큼 위험가중자산이 늘어나게 되고 이는 BIS비율 하락으로 이어진다. 현재 주요 은행들의 달러표시 외화대출 규모를 보면 국민은행 44억8000만달러,우리은행 43억5000만달러,기업은행 40억7000만달러,신한은행 40억3000만달러 등 은행별로 40억달러를 웃돈다. 은행들은 환율이 1500원으로 마감돼 3분기말보다 25%가량 오른다면 BIS비율이 0.3~0.5%포인트 낮아질 수도 있다고 보고 있다.

은행들의 또 다른 우려는 충당금 추가적립이다. 거래기업이 환손실로 인해 대규모 적자를 낸다면 여신건전성 분류를 새로 해야 할 수도 있다. 또 원화로 환산한 부채비율이 높아지게 돼 충당금 부담이 늘어날 수 있다. 예를 들어 여신건전성 분류에서 '정상'인 기업의 경우 충당금 적립률이 0.85%에 불과하지만 등급이 하나 떨어져 '요주의'로 되면 최소 7%의 충당금을 새로 쌓아야 하는 것이다. 이어 '고정'이나 '회수의문'등으로 더 떨어지면 충당금 적립률은 최소 20%,최소 50%로 각각 높아지게 된다.

대표적인 곳이 하나은행이다. 김은갑 NH투자증권 연구위원은 "연말 환율이 1500원이 된다고 가정하면 하나금융의 4분기 적자 폭은 3분기 733억원의 3배인 2000억원에 이를 것"이라고 전망했다. 김 연구위원은 "4분기에는 판매관리비가 많이 들어 환율이 1370원 이상만 되면 하나금융은 4분기에도 적자를 면치 못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김동민/박준동/정인설 기자 jdpower@hankyung.com

[ 용어풀이 ]

키코(KIKO·Knock-In Knock-Out)

수출업체들이 환율이 떨어지는 상황에서 환차손을 막기 위해 은행과 거래하는 파생상품의 한 종류.기업은 환율이 일정 구간 내에 있을 경우엔 수출대금으로 받은 달러를 미리 정한 환율로 팔고 원화를 받을 수 있다. 하지만 환율이 더 떨어져 일정 구간 밑으로 가면 계약이 무효화된다. 반대로 환율이 예상과 달리 치솟아 일정구간 위로 올라가면 당초 팔기로 한 달러보다 2~3배 많은 달러를 시장가격보다 현저히 낮은 계약환율로 팔아야 한다. 때문에 환율이 급등하면 계약을 맺은 수출업체는 엄청난 손실을 입게 된다. 예를 들어 A기업이 환율구간 900~950원에선 930원에 수출대금 50만달러를 팔고,환율이 950원을 웃돌면 100만달러(50만달러의 2배)를 930원에 파는 조건으로 계약을 맺었다고 히자.환율이 1400원으로 오를 경우 A사는 수출하고 받은 50만달러 외에 추가로 50만달러를 시장환율 1400원에 사(7억원) 은행에 930원(4억6500만원)에 팔아야 하기 때문에 2억3500만원의 손실을 입게 된다. 물론 수출하고 받은 50만달러도 키코 계약 때문에 2억3500만원의 환차손을 보게 된다.


외화환산손

전년도 마지막날 환율과 그 다음 해 마지막 날 환율의 차이에 외화부채를 곱해 산출한다. 예컨대 작년 말 원·달러환율이 1000원이었는데 올해 말 환율이 1500원,외화부채가 10억달러일 경우 장부상 5000억원의 손실(500×10억)이 외화환산손으로 기재된다. 반대로 환율이 떨어질 경우에는 환율 차이에 외화부채를 곱해 산출된 금액만큼 외화환산익이 발생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