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lobal View-불확실성을 넘어서

불확실성 투성이다. 세계 금융시장을 초토화시킨 소용돌이가 실물 경제까지 그로기(groggy) 상태로 몰아넣고 있다.

과거 금융시장을 호령하던 미국과 유럽 은행들은 지금 제 앞가림도 못하는 처지다. 금융시스템의 신뢰가 손상되면서 돈이 국경너머 흐르지 못하고 있고,이 때문에 국제금융에 기댄 세계무역에도 빨간불이 켜졌다. 글로벌 경기 침체와 신용 위기가 얼마나 깊은지,얼마나 오래갈 지를 예측하기 힘들다.

글로벌 컨설팅업체 맥킨지는 최신 보고서 '불확실성을 넘어(Leading through uncertainty)'에서 최고경영자(CEO) 입장에서 볼 때 '지금은 1930년대 대공황 이후 가장 불확실성이 큰 시기'라고 진단했다. 하지만 불확실성 속에도 분명하게 드러나는 추세는 있고,이를 잘 포착하면 기회를 잡을 수 있다고 소개했다. 보고서에 언급된 '분명해보이는 것'과 '알 수 없는 것'을 정리한다.

◆커지는 정부…보이지 않는 손은 없다

최근 정부 역할이 비약적으로 커졌다. 미국과 유럽,아시아 각 국 정부는 경쟁적으로 재정 및 통화정책을 강화하고 있고 자동차 등 개별 산업과 기업을 회생시키는 데도 적극적으로 뛰어들고 있다. 금융 등의 산업에선 규제 강화 방안이 모색되고 있다. 보호주의와 국수주의 목소리에 힘이 실리는 추세다.

지역에 따라 권위적 포퓰리즘(대중영합주의)이 나타날 수도 있다. 세계 경제의 동반침체로 공조의 필요성이 커졌지만 개별 국가의 국내 정치적 압력이 증대되면서 협력이 어려울 수 있다. 국수주의적 무역정책이 세계 각지에서 얼마나 확산될 지에 따라 세계화 흐름이 역행할 가능성도 충분하다.

◆디레버리징(Deleveraging)의 가속화

금융시스템의 뿌리가 흔들리고 있는 만큼 대출 축소(디레버리징)는 불가피하다. 낮은 비용으로 이용 가능한 신용 거래는 한동안 부활하지 않을 것이다. 소비자들의 지출 여력이 줄어든다는 의미다. 금융 회사들은 과거보다 훨씬 많은 비용을 들여 돈을 조달할 수 밖에 없고,상대적으로 혁신을 시도할 수 있는 입지는 줄어들 게 분명하다. 수익률도 떨어질 수 밖에 없다.

정부로서는 연금과 교육,의료보험,사회간접자본,환경,안보 등에 대한 지출을 확대하기가 쉽지않다. 일반 기업들로서는 값싼 신용거래를 기반으로 번창했던 사업들의 수익성과 성장률,배당 계획을 모두 재조정해야 한다.

◆구조조정 가속화…그래도 기회는 있다

차입 자본과 신용구매,많은 운전자본이 필요한 사업들은 심각한 타격을 받을 것이다. 생산 주기가 길거나 유연하지 않은 사업,투자 주기가 긴 사업들도 자금 조달에 어려움이 클 것으로 보인다. 쓰러지는 기업들이 생기면서 산업구조조정이 확산될 것이다. 맥킨지가 미국 기업 임원들을 대상으로 지난달 조사한 자료에 따르면 54%가 소속 산업에서 통합이 일어날 것으로 내다봤다.

하지만 정부 역할이 커지면 공공과 민간의 협력을 바탕으로 하는 영역에서는 사업 기회가 확대될 게 분명하다. 록펠러와 카네기는 1870년대 미 경기 침체기에 다른 경쟁사들이 무너질 때 생산성을 높인 기술력으로 정유와 철강산업을 장악했다. 100년 뒤 워렌 버핏은 다 쓰러져가는 섬유회사 벅셔 헤서웨이를 사들여 세계적인 투자회사로 변모시켰다. 일본 도요타는 2차 오일쇼크 틈에서 글로벌 톱 메이커로 올라섰다.

◆여전히 불확실해 보이는 것들은

맥킨지는 미 은행권이 향후 2년간 가계 및 기업 대출을 적게는 1조6000억달러(230조원)에서 많게는 3조7000억달러(530조원) 줄일 것으로 전망했다. 대출 축소 정도에 따라 세계 경제가 받을 타격도 달라질 수 밖에 없다. 축소 폭에 대한 추정 범위가 넓은 것은 미 정부의 경기 부양책이 얼마나 효과적일 지,글로벌 자금시장이 얼마나 광범위하게 경색될 지,국수주의적 정책이 어떤 강도로 확산될 지 등이 변수로 남아있기 때문이다.

대출 축소 폭이 작으면 1년 정도 후에 경기가 회복세를 탈 것으로 기대된다. 반면 광범위한 대출 회수는 같은 기간 미국 성장률을 6.7%포인트 끌어내리며 5년 이상 침체를 불러올 수 있다. 현재로선 2년 안팎 정도 시장경색이 이어질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맥킨지는 불확실성이 많을 때는 세부적인 시나리오를 만들어 대응할 것을 주문했다. 아울러 조직과 전략을 유연하게 재편한 뒤 정보를 부지런하게 수집하면서 민감하게 반응토록 하고,충격을 쉽게 흡수해 원래대로 복원할 수 있는 탄성을 기를 것을 당부했다.

김수언 기자 sooki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