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바람이 몰아쳤다. 한치 앞도 보이지 않았다. 배는 난파됐고 먹을 것은 다 떨어졌다. 1914년 겨울,어니스트 섀클턴이 이끄는 남극대륙 횡단 탐험대의 목표는 이제 '생존'으로 바뀌었다.

배고픔이 가장 큰 고통이었다. 그러나 팀원들이 보여준 행동은 놀라웠다. 펭귄을 잡아 굶주림을 달래면서 서로를 격려했다. 동상으로 발이 썩어들어가는 중에도 희생 정신으로 다른 사람들을 도왔다. 섀클턴은 이들을 구하기 위해 모든 수단을 강구했고 스스로 모범을 보였다. 그는 죽음의 고비를 수없이 넘은 끝에 마침내 대원 27명을 기적적으로 구하고 637일 만에 전원 무사 귀환시켰다.

이에 앞서 1913년 스테판손의 캐나다 탐험대가 북극 지역을 향해 돛을 올렸다. 이들도 똑같은 운명에 처했다. 빙벽에 갇혀 배가 난파됐고 절망이 엄습해 왔다. 이 상황에서 대원들은 저마다 혼자 살기 위해 날뛰었다. 굶주림에 지친 팀원들은 이기심과 탐욕으로 '해적'이 돼 버렸고 결국 한 명도 살아남지 못하고 자멸해 버렸다.

세계적인 금융 위기로 고통받고 있는 지금,이 두 가지 사례가 주는 교훈은 특별하다.

섀클턴 리더십의 위대성은 어디에 있는가. 삶과 죽음의 순간이 교차되는 극한 상황에서 그가 발휘한 힘의 원천은 무엇인가. 그것은 바로 '서바이벌 리더십'이었다. 그의 첫 번째 전략은 "궁극적인 목표를 잊지 말라.그리고 단기 목표 달성에 총력을 기울여라"는 것이었다. 그는 비상 식량을 구하기 위해 썰매와 구명 보트를 끌고 얼음 벌판을 가로지른다는 목표를 정하고 이를 위해 과감히 모험을 감행했다.

두 번째는 "가시적이고 오래 기억될 상징과 행동으로 솔선수범하라"였다. 배가 난파됐을 때 그는 짐을 가볍게 하는 게 필수적이라고 판단하고 꼭 필요하지 않은 물건은 버리라고 명령했다. 그는 윗옷 안쪽을 뒤져 귀중품들을 눈 속에 던져 버렸다. 마지막 남은 순금 담배 케이스마저 찾아내 땅에 버렸다. 이 극적인 제스처로 '생존의 조건'을 제시한 것이다.

그는 "갈등을 극복하라.분노를 억제하고 다른 의견을 존중하며 불필요한 대립을 피하라""축하할 일,함께 웃을 수 있는 일을 찾아라""팀 메시지를 끊임없이강화하고 단결심을 키워라"는 지침을 하나씩 만들고 실행했다. 또 모든 구성원들이 정보를 공유하고 목표에 동참하도록 배려했다.

그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것은 "절대 포기하지 마라.또 한 번의 기회가 있다"였다. 좌절이야말로 모든 가능성을 물거품으로 만드는 독이기 때문이다.

7년 전 외환 위기의 여독이 채 가시기 전에 국내에 소개됐던 《섀클턴의 서바이벌 리더십》(데니스 퍼킨스 지음,최종옥 옮김,뜨인돌)을 다시 읽으며 생각한다. 위기의 조건과 생존의 조건이 어쩌면 이리도 닮았을까. 요즘 미국과 유럽의 최고경영자(CEO)들이 섀클턴의 탁월한 리더십과 위기관리 능력을 새롭게 벤치마킹하는 이유를 알 것 같다.

지금은 외환위기 때와 달리 전 세계가 위기의 톱니바퀴로 맞물려 돌아가는 총체적 난국이다. 기업의 CEO뿐만 아니라 국가 경영의 최고 책임자에게 더욱 필요한 것이 '섀클턴 정신'이다. 이명박 대통령에게 권한다. 아무리 바쁘더라도 《섀클턴의 서바이벌 리더십》을 먼저 읽어 보시라.

고두현 문화부 차장 kd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