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의 자원배분 원리는 '1인1표' 아닌 '1원1표'의 원칙에 따른다. 이 원리를 영어로는 달러 보팅(dollar-voting)이라고 한다. 이처럼 시장경제는 분명히 부자들이 더 큰 힘을 쓰도록 된 경제다. 시장경제가 민주주의 기본 원리인 '1인1표'를 버리고 황금만능주의에나 어울릴 법한 '1원1표'의 원칙을 따르는 까닭은 무엇일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시장에서 부자가 더 큰 힘을 쓰지 못하는 사회에서는 모두가 함께 가난해져 버리기 때문이다.

현대는 분업의 시대다. 로빈슨 크루소처럼 필요한 물자를 각자 스스로 생산 조달하는 자급자족시대가 아니다. 사람마다 생업으로 소득을 얻고 그 돈으로 시장에서 필요한 물자를 구입해 생활한다. 더 많은 물자를 구입하려면 소득이 그만큼 더 많아야 하기 때문에 사람들은 더 많은 소득을 얻기 위해 노력한다. 사람들이 자신의 생업으로부터 얻는 소득의 크기는 각자 무슨 일을 하는지에 달려 있다.

내가 하는 일의 성과를 원하는 사람들이 많으면 시장은 내 일을 비싼 값에 사가고, 나는 높은 소득을 얻는다. 내 일을 원하는 사람이 별로 없으면 내 소득도 낮다. 시장에서 높은 소득을 얻고 싶으면 많은 사람들이 원하는 일을 해야 한다. 사람마다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지만 남을 위해 일해야 내가 이익을 얻는 곳이 바로 시장인 것이다. 뒤집어 말하면 시장에서는 내가 이익을 얻기 위해 남들이 원하는 일을 하는 것이다. 만약 내가 이익을 얻을 수 없다면 남들을 위해서 일할 까닭도 없다.

시장이 '1원1표' 대신 '1인1표'의 민주적 원칙을 따른다면 돈을 아무리 많이 벌어도 아무 소용이 없다. 남들이 원하는 일을 찾아서 열심히 해준 사람이나 아무 일도 하지 않은 사람이나 시장경쟁에서 우열이 없이 마찬가지기 때문이다.

세상이 원하는 일을 열심히 했는데도 아무 일도 하지 않은 사람에 비해 조금도 유리한 점이 없다면 누가 남을 위해 일할까. 민주주의적 '1인1표'의 원칙을 시장에 강요하면 사람들이 남을 위해 일할 유인을 잃는다.

'1원1표'의 시장원칙은 경제를 부자중심으로 운용한다. 부자가 재산을 온갖 부정한 방법을 동원해 축재했다면 이 원칙은 분명히 문제다. 그러나 시장에서 재산을 모으는 방법은 많은 사람들이 원하는 일을 찾아서 수행하는 것뿐이다. 그런데도 현실적으로 부정축재자가 많다면 그것은 허술한 법치가 책임져야 할 일이지 시장원칙을 나무랄 일이 아니다. '1원1표'의 원칙이 문제가 아니라 부정축재를 방치하는 치안이 문제이기 때문이다. 문제의 근원을 잘못 파악해 부자중심의 '1원1표'를 폐기하고 민주적 '1인1표'의 원칙을 채택한 사회에서는 사람들의 근로유인이 소멸한다. 그리고 모든 시민이 근로유인을 잃은 사회는 함께 가난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서울대 경제학과 교수 shoonlee@snu.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