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2년 늦가을,울산시 성남동의 한 허름한 지하 창고에 '유영기공사'라는 조그마한 간판이 내걸렸다. 이곳에서 23세 청년이 소형 프레스를 설치해 볼트와 너트를 만들었다. 복잡한 볼트 주문이 들어오면 외국서적을 뒤져가며 배우고 익혀 나갔다.

그가 바로 최근 열린 무역의 날에서 3억달러 수출탑을 수상한 성진지오텍 전정도 회장(49)이다. 전 회장은 설립 당시 5000만원의 매출도 넘기지 못했던 영세업체를 26년 만에 매출 5300억원대의 세계적인 플랜트 설비업체로 변신시켰다. 특히 해외시장 개척 10년 만에 수출액을 100만달러에서 3억달러로 무려 300배나 끌어올렸다.

"사업을 하는 형님들의 영향을 받아 일찍부터 비즈니스가 가져다주는 성취감에 매료됐습니다. 사업을 너무 하고 싶어 대학 진학도 포기할 정도였지요. 주변 사람들은 '정신이 나갔다'고 만류했지만 저의 고집을 꺾지 못했습니다. " 3형제 중 막내인 전 회장은 모아뒀던 자금과 사업을 하던 두 형으로부터 약간의 자금을 빌려 성진지오텍의 모태인 '유영기공사'를 차렸다.

전 회장은 기술을 익히기 위해 관련 논문과 서적을 있는 대로 구입해 읽어 나갔다. 전 회장은 1994년 선박의 선체 부분에 해당하는 블록생산을 계기로 초대형 설비사업에 뛰어들었다. 부가가치가 높아 볼트와 너트 등 단순부품보다 수백배 더 많은 이익을 챙길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잘 나가던 그에게 위기가 닥쳤다. 1997년 외환위기 때 전체 매출의 40%를 차지하던 거래 대기업이 부도를 냈다. 실패를 죽기보다 싫어했던 그에겐 충격이 아닐 수 없었다. 부도 위기에 내몰렸을 때 사원들이 적금을 깬 돈을 갖고 찾아와 "제발 회사를 일으켜 달라"며 눈물짓는 것을 보고 마음을 다시 잡았다.

이때부터 그는 부침이 많은 국내시장보다는 해외시장으로 눈을 돌렸다. 대규모 플랜트 설비를 성공적으로 완수한 2002년부터는 세계시장에서 기술력을 인정받았다. 같은 해 전남 광양 액화천연가스 복합 화력발전소에 들어가는 폐열회수 설비(HSRG)와 프랑스 시뎀사의 담수화 플랜트 사업을 성공적으로 완수했다. 2007년을 고비로 성진지오텍은 세계적인 기업으로 부상했다. 화학플랜트용 초대형 정유탑 분야에서 세계시장 점유율 1위(32%)를 달성했고 2억달러 수출탑을 수상하는 겹경사를 맞았다.

전 회장은 외환위기를 겪으면서 오히려 불황기에 더 많은 자금을 투자하는 공격적인 경영스타일도 체득했다. 2004년 중국발 원자재 폭등으로 자금 융통이 다소 어려웠지만 그는 역발상으로 울산 바다 인접지역에 대형 생산기지를 잇달아 조성했다. 지금까지 조성된 생산기지만 총 4개단지 45만㎡에 이른다. 이는 지난해부터 불어닥친 중동발 특수를 십분 활용해 초대형 담수설비와 조선해양 플랜트 주문을 잇달아 수주하는 힘으로 작용했다. 전 회장은 "호황기 과실을 제대로 따먹으려면 불황기에 철저한 준비를 해야 한다"며 "2010년까지 매출 1조원의 에너지 종합 기업으로 성장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시설 투자에 나서겠다"고 말했다.

울산=하인식 기자 hai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