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국채가 사상 처음으로 제로금리로 발행됐다. 일본에 이어 미국에서도 제로금리 시대가 열린 셈이다.

9일 미 재무부가 실시한 300억달러 규모 4주만기 국채 입찰에 발행 규모의 4배 이상에 달하는 자금이 몰리면서 낙찰금리가 연 0.00%로 결정됐다. 2001년 첫선을 보인 이래 4주만기 국채가 제로금리로 발행되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4주만기 국채 수익률은 작년 1월29일에만 해도 연 5.175%로 사상 최고 수준을 보였었다.

심지어 이날 유통시장에선 3개월 만기 미 국채 유통수익률이 -0.01%로 떨어졌다. 블룸버그통신은 이는 1백만달러를 투자하면 만기때 25.56달러의 손실을 보는 수준이라고 전했다. 3개월 국채 유통수익률이 마이너스를 기록한 것은 글로벌 자금이 미 국채에 몰리는 상황에서 단기자금을 의무적으로 미 국채로 운영해야 하는 일부 헤지펀드들이 마이너스 수익률로 국채를 사들였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전날 재무부가 실시한 270억달러 규모의 3개월만기 국채 입찰에서 낙찰금리는 연 0.005%를 보였다. 이는 1929년 3개월 국채 발행을 시작한 이후 가장 낮은 수준이다.

이처럼 미 국채에 자금이 쏠리는 것은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의 금리인하 의지가 워낙 강한데다 일부 기관투자가들이 연말 결산을 앞두고 채권 투자 비중을 높이고 있어서다. 또 FRB가 모기지(주택담보대출) 금리를 낮추기 위해 국채를 대거 매입하는 방식으로 채권시장에 개입하고 있는 것도 한 요인으로 꼽힌다. 게다가 미국 경제가 내년 상반기까지 마이너스 성장할 가능성이 제기되면서 제로금리조차도 실질 수익률 측면에선 나쁘지 않다는 인식이 퍼져나가고 있다. 디플레이션이 현실화돼 물가하락세가 가속화되면 제로금리가 되더라도 실질이자율은 상승하는 효과가 있다.

테오도르 아케 미즈호증권 국채거래팀장은 "회계 장부에 우량 자산을 많이 보유하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길 원하는 기관투자가들이 낮은 금리에도 미 단기 국채물을 공격적으로 사들이고 있다"고 말했다.

한편 영국의 가디언지는 이날 영국의 10월 산업생산이 1991년 이후 최대인 5.2% 감소했다며 영국에서도 내년중 제로금리 시대가 도래할 가능성이 높아졌다고 보도했다.

뉴욕=이익원 특파원 ik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