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영설 <한경 가치혁신연구소장 yskwon@hankyung.com>

리스크(risk)는 사실 '위험'이라고 번역하기엔 적절하지 않다. 오히려 불확실성에 더 가깝다. 불확실성이라고 번역할 때와 위험이라고 번역할 때는 엄청난 차이가 난다. 불확실성은 어쩌면 좋은 사업기회다. 그 가능성을 높이 보는 사람이 적기 때문에 크게 망하든 크게 흥하든 도전하는 자의 몫이다. 그러나 위험이라고 하면 도전하는 것 자체가 무모한 일이요, 나쁜 일로 여겨지는 문제점이 있다.

지금 전 세계가 겪고 있는 금융위기를 리스크와 관련해서 생각해보자. 앞으로 투자를 포함한 경영활동이 위험회피(risk averse)적이 될까, 아니면 위험감수(risk taking) 분위기가 생길까. 당연히 위험회피적인 풍토가 번지게 돼 있다. 은행,기업은 물론 나라 차원에서 큰 낭패를 본 뒤라 극도의 위험회피 경제가 아주 오랫동안 계속될 전망이다. 이번 경제위기가 바닥을 치고 급하게 솟구치는 V자형이나 완만하게라도 고개를 드는 U자형이 아니라 불황이 지리하게 계속되는 L자형이 될 것이라고 걱정하는 사람들이 많은 이유가 여기에 있다.

국내적으로 보더라도 위험회피적인 풍토가 이미 번져가고 있다. 대통령까지 나서서 다그쳐도 은행이 꿈쩍도 않는 것이나,어쩌다 대출을 해줘도 기술신보 같은 곳이 전액보증을 서도록 하는 것은 극심한 위험회피에 다름 아니다. 기업들이 투자하지 않는 것, 신규채용을 줄이는 것, 인력구조조정에 나서는 것이 모두 위험회피의 결과인 것이다. 더 큰 위험을 초래할 수도 있는 일은 절대 벌이지 않으려 하는 것이다.

위험회피는 그 본질상 손실을 피하고 싶어하는 심리가 그 밑바탕에 있다. 그러나 예상되는 손실보다 훨씬 많은 이득이 보이면 사람들은 위험을 감수하고 도전하는 경향이 있다. 세계적인 베스트셀러인 '리스크'의 저자 피터 번스타인은 "위험감수야말로 현대 서구사회를 이끌어가는 기폭제"라고 강조한 바 있다. 그는 최근 한 인터뷰에서 "각종 제한이 풀리고 선택할 수 있는 것이 훨씬 많아지는 지금이야말로 위험을 감수하고 도전하기에 최적의 환경"이라고 말했다.

남들이 못하고 있으니 투자하면 앞설 것이요, 남들이 채용을 줄이는 지금이 인재 뽑기에는 최고의 타이밍이며, 다른 은행들이 안 빌려주고 있으니 지금이 평생단골을 잡을 수 있는 적기라는 생각들을 해야 한다. 망하는 회사가 많으니 오히려 창업하기엔 좋은 시절이라고 기뻐해야 옳다. 이런 것은 역발상이 아니라 정상적이고 상식적인 생각이다. 원래 리스크란 말 자체가 '뱃심좋게 도전하다'의 뜻을 가진 초기 이탈리아어에서 나온 단어라고 한다.

경제위기를 돌파하기 위해 여러가지 아이디어가 쏟아져 나오고 있지만 리스크에서 기회와 도전거리와 밝은 미래를 찾아낼 수 있는 경제인들이 많아지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불황의 터널이 끝날 때면 이전에는 눈에도 띄지 않던 나라나 기업이나 개인이 새로운 강자로 부상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런 기회를 잡기 위해서는 우리 사회도 위험감수적인 풍토가 조성돼야 한다. 쓸 돈을 나눠주는 감세도 중요하지만, 창업자금을 풀어 새로운 기회를 주는 조치도 시급해 보인다. "사기꾼들만 타간다""옥석을 가려야 한다" 등의 위험회피적 염려들은 경기가 살아날 기미가 보일 때 해도 늦지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