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영수 <LG디스플레이사장 yskwon@lgdisplay.com>

우리의 고유한 음악이면서 세계적 보편성을 획득한 음악 장르가 있다. 바로 사물놀이다.

얼마 전 필자의 회사 행사에 사물놀이패를 초청한 적이 있다. 사물놀이를 볼 때면 몇 단계의 감정변화를 경험한다. 맨 처음에는 꽹과리와 징,북 그리고 장구 등 네 가지 타악기가 어우러져 쏟아내는 소리에 소름이 돋는 전율을 느끼게 된다. 그 다음으로는 머리를 흔들며 혼신을 다해 악기를 두드리는 사물놀이패의 땀방울에서 뜨겁고 가슴 뭉클한 감동이 전해온다. 흥분으로 고조되었던 가슴이 어느 정도 가라앉고 나면 나도 모르게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덩실덩실 춤이라도 추고픈 신명이 절로 난다.

사물놀이가 비단 한국인뿐만 아니라,외국인에게까지 그 생생한 감동과 흥분이 전달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국악이나 음악에 대해 깊이 있는 지식을 갖지 못한 필자에게 사물놀이의 매력은 '열정'에 있지 않나 싶다. 단 10분을 공연하더라도 머리,어깨,팔,다리 신체 어느 한 부분 쉬지 않고 땀 흘리며 신명 나게 연주하는 사물놀이패를 보고 있노라면 그들의 열정이 내 속으로 옮겨져 오는 듯한 경험을 하게 된다. 사람들의 관심이 멀어져 가고 있는 국악을 하는 그들에게 왜 애환이 없겠는가. 그럼에도 꽹과리만 잡으면,북만 치면 열정을 쏟아붓는 그들의 모습은 희망이고 신명이며 감동이다.

사물놀이패를 예로 들었지만 열정적으로 산다는 것은 보는 사람들에게 깊은 감동을 준다. 자신이 처한 환경에 굴하지 않고 희망을 품고 열심히 일하는 모습만큼 아름다운 모습이 있을까 싶다. 한때 열정이 없었던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 구태여 지난 기억을 거슬러 살펴보지 않아도 무언가에 뜨겁게 달아올랐던 적이 있을 것이다. 공부든,이성이든,일이든 아무리 적어도 한번쯤은 열정에 사로잡힌 기억 말이다. 그런데 어느 사이엔가 그 열정이 사라지고 없는 것을 발견하게 되면 당황스러워지기까지 한다.

중요한 것은 지난 날의 열정을 회복하는 일이다. 요즘처럼 세계 경제가 위축되고 미래가 불투명한 시기에 한 기업의 수장으로서 열정보다는 걱정이 앞서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이럴 때일수록 희망의 끈을 놓지 않고 내 속에 잠재돼 있는 열정의 불씨를 되살리는 일이 무엇보다 시급하다는 생각이다.

사물놀이패의 열정이 내 속에 잠들어 있던 열정의 불씨에 불을 붙이는 것처럼 내가 보여주는 열정은 내 주위 사람들에게 전염되어 절망을 이겨내는 힘이 될 것이 아니겠는가. 모두가 열정이 있는 삶,뜨거운 삶으로 얼마 남지 않은 한 해를 마무리했으면 하는 바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