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여록] 시장판 같은 예산 흥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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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 예산결산특위 소속 의원들은 요즘 정신이 없다. 정해진 기한에 맞춰 '밀린 숙제'를 하려다보니 그렇다. 밀린 숙제란 283조8000억원에 달하는 내년도 나라살림을 정하는 일이다. 여야 합의로 12일까지 예산안 심의를 끝내기로 한 마당에 주어진 시간은 지난 6일부터 일주일밖에 되지 않으니 마음이 급하다.
그러다보니 심의 속도를 내기 위한 별별 '아이디어'가 다 나온다. 단적인 예가 9일부터 심의에 들어간 사회간접자본(SOC) 항목에 대한 논의방식이다. 이번 예산안의 최대 쟁점인 SOC를 놓고 한나라당은 계수조정 소위(小委) 밑에 소소위(小小委)를 만들어 심의하자고 했고 민주당은 일부만 골라서 논의하자고 맞섰다.
문제는 소소위를 만들 경우 지역 이권과 연관된 수조원의 사업을 불과 3명의 의원이 밀실에서 합의할 수 있다는 점이다. 그렇지 않아도 각종 로비가 쇄도하는 상황이라 더더욱 그렇다. 게다가 4000건의 SOC 항목 중 쟁점이 될 만한 800여건만 논의하자는 것도 나머지는 한번 들춰보지도 않고 처리하겠다는 의미다. 말그대로 수박 겉 핥기도 생략하겠다는 얘기다.
실제 심의과정을 들여다보면 더욱 기가 찬다. 9일 심의에서는 한국수자원공사 출자예산 150억원이 시정잡배들 같은 흥정 속에 결정됐다. 당초 250억원으로 책정됐던 것을 야당 의원이 "200억원을 깎자"고 하니 정부 측은 "50억원만…(깎아달라)"고 매달렸다. 이에 여당 의원이 "100억원만 감액하자"고 수정 제의하자 정부가 수용해 '낙찰'됐다. 순식간에 200억원,100억원이 왔다갔다 했지만 정작 예산의 적절성 여부에 대한 논의는 한마디도 없었다.
정부의 준비부족도 예산안 졸속 심의를 키웠다. 야당에서 '대운하 예비사업'이라고 한 달 전부터 비판하고 있는 4대 강 정비사업과 관련해 제출한 국토해양부의 보고는 3줄의 사업설명이 전부였다. "8000억원에 가까운 사업비를 3줄 갖고 심사하자니 배짱도 좋다"는 의원들의 질타에 공무원들은 꿀먹은 벙어리였다.
어떻게보면 예결특위 의원들은 억울하다. 날밤 새며 벼락치기하게 만든 책임은 한 달 전부터 제출된 예산안 심사를 정쟁으로 미뤄온 여야 지도부에 있기 때문이다. 초등학생이 밀린 방학숙제 해치우듯 내년 예산안을 심사하는 국회의 모습에 기가 찰 뿐이다.
노경목 정치부 기자 autonomy@hankyung.com
그러다보니 심의 속도를 내기 위한 별별 '아이디어'가 다 나온다. 단적인 예가 9일부터 심의에 들어간 사회간접자본(SOC) 항목에 대한 논의방식이다. 이번 예산안의 최대 쟁점인 SOC를 놓고 한나라당은 계수조정 소위(小委) 밑에 소소위(小小委)를 만들어 심의하자고 했고 민주당은 일부만 골라서 논의하자고 맞섰다.
문제는 소소위를 만들 경우 지역 이권과 연관된 수조원의 사업을 불과 3명의 의원이 밀실에서 합의할 수 있다는 점이다. 그렇지 않아도 각종 로비가 쇄도하는 상황이라 더더욱 그렇다. 게다가 4000건의 SOC 항목 중 쟁점이 될 만한 800여건만 논의하자는 것도 나머지는 한번 들춰보지도 않고 처리하겠다는 의미다. 말그대로 수박 겉 핥기도 생략하겠다는 얘기다.
실제 심의과정을 들여다보면 더욱 기가 찬다. 9일 심의에서는 한국수자원공사 출자예산 150억원이 시정잡배들 같은 흥정 속에 결정됐다. 당초 250억원으로 책정됐던 것을 야당 의원이 "200억원을 깎자"고 하니 정부 측은 "50억원만…(깎아달라)"고 매달렸다. 이에 여당 의원이 "100억원만 감액하자"고 수정 제의하자 정부가 수용해 '낙찰'됐다. 순식간에 200억원,100억원이 왔다갔다 했지만 정작 예산의 적절성 여부에 대한 논의는 한마디도 없었다.
정부의 준비부족도 예산안 졸속 심의를 키웠다. 야당에서 '대운하 예비사업'이라고 한 달 전부터 비판하고 있는 4대 강 정비사업과 관련해 제출한 국토해양부의 보고는 3줄의 사업설명이 전부였다. "8000억원에 가까운 사업비를 3줄 갖고 심사하자니 배짱도 좋다"는 의원들의 질타에 공무원들은 꿀먹은 벙어리였다.
어떻게보면 예결특위 의원들은 억울하다. 날밤 새며 벼락치기하게 만든 책임은 한 달 전부터 제출된 예산안 심사를 정쟁으로 미뤄온 여야 지도부에 있기 때문이다. 초등학생이 밀린 방학숙제 해치우듯 내년 예산안을 심사하는 국회의 모습에 기가 찰 뿐이다.
노경목 정치부 기자 autonom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