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창현 <서울시립대 교수ㆍ경영학>

위기설 부정ㆍ실현 두 힘 충돌, 예측 깨려는 노력에 힘 실어줘야

올해 노벨 경제학상을 받은 폴 크루그먼 교수는 아시아 경제위기를 예측했다고 알려져 있다.

그러나 그가 정말 아시아 경제위기를 예언했는지는 조금 따져보아야 한다. 얘기는 이렇다. 당시 앨린 영이라는 학자가 아시아 국가들의 경제성장을 연구한 논문을 썼고 크루그먼 교수는 1995년 포린 어페어스라는 잡지에 실린 글에서 앨린 영 교수의 논문을 인용해 아시아 경제의 정체 가능성을 지적했다.

동아시아 경제의 성장이 자본과 노동의 축적에 기인한 바 크고 기술발전의 역할은 미미했는데 요소축적에는 한계가 있으므로 결국 아시아 국가들의 성장이 한계를 보일 것이라는 지적이었다. 그는 1998년 홍콩에서 행한 강연에서 자신이 10%쯤 옳았는데 다른 사람들은 150% 틀렸기 때문에 자기가 부각되는 것이라며 다소 농담 섞인 발언을 했다. 위기 예측이라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를 볼 수 있는 부분이다.

사실 경제예측은 맞을 수도 있고 틀릴 수도 있다. 문제는 예측이 맞느냐 하는 것이 예측을 대하는 경제주체들의 태도와 행동에 좌우되는 측면이 있다는 점이다.

경제가 안 좋아진다고 예측을 하니까 경제주체들이 그러면 안 되지 하며 여러 가지 노력을 하고 정부가 대규모 경기부양책을 내놓으면서 경제의 침체 폭이 상당 부분 줄어들거나 회복의 기미까지 보인다면 이 예측은 틀리게 된다. 경제예측의 자기부정적 속성이 작동하는 것이다.

그러나 다른 경우도 있다. 예를 들어 A은행이 곧 파산할 것 같다는 예측이 제시되면 A은행의 예금주들은 은행으로 뛰어가서 예금을 인출한다. 한꺼번에 예금을 다 지급할 수 있는 은행은 없다보니 고객이 한꺼번에 몰리면 A은행은 문을 닫는다. 예측은 옳았던 것으로 밝혀지고 이를 얘기한 사람은 예언자가 된다. 그런데 이 예측이 맞은 것은 경제주체들이 예측이 맞도록 움직였기 때문이다. 경제예측의 자기실현적 속성이 작동한 것이다.

지금 한국경제에도 두 가지 힘이 작동하고 있다. 침체를 극복하기 위해 정부는 각종 지원책과 대규모 재정집행 대책을 내놓고 있다. 경제가 안 좋아진다는 예측이 틀리도록 하기 위한 노력이 진행되는 셈이다.

그러나 동시에 경제침체의 자기실현적 속성 또한 작동하고 있다. 경제가 나빠질 것 같고 실제로 나빠지고 있는 와중에서 대부분의 경제주체들은 지갑을 닫고 소비를 줄이고 주식을 팔고 있다. 이렇게 되면 예측은 정확하게 들어맞게 된다.

그런데 이러한 와중에 더욱 안타까운 것은 경제에 대한 최악의 시나리오가 전제된 위기설이 유포되고 있다는 점이다.

9월 위기설이 돌던 것이 엊그제 같은데 이제 3월 위기설이 돌고 있다. 지금 이 시점에서 이러한 위기설은 적절치 못한 측면이 있다.

왜냐하면 경제가 힘들어지는 경우 경제주체들은 부정적 예측에 더 무게를 두게 되기 때문이다. 긍정적인 뉴스는 별로라고 생각하며 거의 반응을 하지 않다가 부정적인 뉴스가 나오면 바로 저거다라며 반응하는 '뉴스 선택의 비대칭성'이 작동하는 것이다. '새가슴'이 되어버린 경제주체들의 반응 때문에 근거가 부족하더라도 최악의 시나리오가 제시되면 예측의 자기실현적 속성이 극대화되면서 취약한 경제는 더욱 엉망이 될 수도 있다.

중국의 전설적인 명의(名醫))인 화타의 맏형은 사람들의 모습만 보아도 무슨 병에 걸릴지를 알고 미리 예방을 하도록 해주었고 이 말을 지킨 사람들은 아예 병에 걸리지 않았기 때문에 중병 걸린 사람을 잘 고쳐준 동생 화타처럼 유명해지지는 못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위기가 영웅을 만들지 모르지만 화타의 맏형처럼 적절한 처방을 통해 예측의 자기부정적 속성이 더욱 강조되도록 하는 사려 깊음이 아쉬운 시점이다.

/바른사회시민회의 사무총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