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헌 <한양대 교수ㆍ기계공학>

보증 안먹히고 흑색선전 난무

정부, 대주단 제외 등 대책 세울때

우리나라 수출의 견인차였던 반도체,자동차 및 조선산업에 관한 내년 수출전망이 불투명한 가운데 올해 500억달러에 육박한 플랜트수출에 관심이 커지고 있다. 해외플랜트 수출의 대부분은 국내 플랜트EPC기업(플랜트 설계ㆍ조달ㆍ시공 일괄수행기업)이 행한 유ㆍ무형생산에 의해 이뤄지며,플랜트 제품을 팔아 이뤄진 것이 아니다. 이런 수주의 주역은 6~7개 민간기업의 전문기술인 집단이며 대형건설사의 플랜트사업본부 혹은 대형 엔지니어링 기업으로 존재한다.

며칠 전 우수한 졸업반 학생이 면담을 요청했다. 국내최대 플랜트EPC기업에 취업했는데 출근해야 할지를 고민하고 있다는 것이다. 국제적인 경제위기 속에서 유가가 급락해 중동으로부터 플랜트 수주가 취소된다는 기사를 보고 생긴 고민이었다. 필자가 플랜트EPC기업 CEO에게 확인했더니 "중동 발주자가 돈이 없어 그런 것이 아니고,경기가 나빠질수록 발주액이 낮아지기 때문에 경기에 좌우되는 원자재값이 더 내려갈 때까지 발주를 연장시키고 있어서 그런 것이다. 대부분의 발주계획은 유가 50~60달러를 예상하고 작성된 것이며 취소된 발주물량은 10%도 안된다"는 것이었다. 이런 내용을 그 학생에게 전달했더니 고개를 끄덕이고 돌아갔다.

수출을 주도했던 효자들의 힘이 빠진 현재 무언가 '기댈 언덕'이 있어야 한다. 우리가 필요로 하는 40조~50조원 정도의 내년 기름값은 플랜트EPC기업에 기대 봐도 된다. 이'기댈 언덕'을 든든히 하기 위해 전문가들은 여러 정책방안을 제시해왔다. 그 방안은 플랜트EPC전담부서 설치,해외플랜트EPC수주 금융지원 확대,해외파견근무자소득 면세점 상향 등이다.

그런데 최근 국제경기악화와 맞물려 풀기 어려운 문제가 돌출돼 있다. 하나는 우리 국책 은행의 보증이 해외에서 일부 통하지 않는다는 것이며,또 하나는 한국의 플랜트EPC기업이 은행관리상태라는 소문이 파다하다는 것이다. 이 두 가지는 해외플랜트EPC 수주에 치명적인 것으로 긴급히 진화돼야 할 현안이다.

금융위기 전까지만 해도 해외에서 문제없이 인정되던 우리 국책 은행의 보증이 일본을 제외한 아시아국가 전체의 신용등급 하향에 휩쓸려 일부 통용되지 못한다는 것이다. 이미 몇몇 플랜트EPC기업은 일본기업의 도움을 받아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고 한다. 완공하기까지 평균 3년 정도 걸리며 수천억~수조원이 소요되는 프로젝트를 금융회사의 도움 없이 진행할 수 있는 한국기업은 없다. 이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우리기업이 이미 수주한 프로젝트도 중단될 수 있다. 해외발주자들이 한국의 국책은행을 믿지 못하니 정부가 나설 수밖에 없다.

모든 해외플랜트EPC프로젝트에는 해외경쟁자가 있다. 미국 일본 및 유럽 일부국가가 독식하던 플랜트EPC사업에 우리 기업이 4~5%의 시장을 점유하자 기존업체들이 긴장하고 있다. 이 와중에 한국플랜트EPC기업의 모회사인 대형 건설사들이 모두'대주단협약'에 의해 은행통제 하에 들어갈 것이란 소식이 전해진 것이다. 해외경쟁사들은 한술 더 떠 한국업체들이 모두 은행관리 혹은 부도상황에 들어갔다고 흑색선전을 하고 있다. 장기간 소요되는 프로젝트를 EPC기업에 믿고 맡겨야 하는 발주자 입장에선 한국EPC기업을 상대하는 데에 위험이 커진 것이다. 따라서 해외발주자는 한국기업을 피하게 되고,일을 맡기더라도 소속그룹사나 심지어 한국정부의 보증을 요구하게 된다.

우리 경제가'기댈 언덕'인 해외플랜트EPC 수주에 참여하는 건설사를 대주단협약에서 제외시키도록 금융회사를 지도하거나 아니면 EPC사업수행 보증서를 떼주는 등의 대책이 요구된다. 우리 수출의'기댈 언덕'을 허물어 버리지 않으려면 관련부서의 적극적인 대응이 있어야 할 것이다. /한국플랜트학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