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승수 국무총리가 지난 10일 전통시장(재래시장) 현황을 살피기 위해 서울 방학동 도깨비시장을 돌아봤다. 지난해 4월엔 한덕수 당시 총리가 취임 이튿날 첫 공식 외부행사로 이곳을 찾았다. 이명박 대통령도 서울시장 재임시절인 2005년 다녀갔다.

주요 인사들이 수많은 전통시장 중 유독 도깨비시장을 찾은 이유는 뭘까. 바로 전통시장 현대화의 첫 성공사례이기 때문이다. 속칭 '안방학동'(도봉구 방학2동 632) 주택가에 들어선 도깨비시장은 250m가량 쭉뻗은 폭 8m 공간에 87개 점포와 13개 노점이 있다. 1980년대 초반 노점이 하나 둘 모여들며 형성된 이 시장은 단속반이 뜨면 상인들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나타나는 모습이 도깨비 같다 해서 도깨비시장이란 이름이 붙었다.

2000년대 초반만 해도 다른 전통시장처럼 외환위기와 대형마트들 틈바구니에서 폐쇄 위기를 맞기도 했다. 지하철x버스정류장과 멀어 접근성이 떨어지고 인근에 하나로클럽ㆍ이마트ㆍ홈플러스(옛 홈에버) 등 대형마트가 3개나 들어선 것.위기에 몰린 상인들은 2003년 '부활'을 시도했다. 서울시의 지원금 7억7600만원과 상인들이 모은 1억9400만원을 합쳐 리뉴얼 공사에 들어간 것.천장 투명 아케이드 설치,도로 포장 등 5개월간 공사를 거쳐 2004년 1월 새로 문을 열었다.

하지만 말끔해진 시장을 호기심으로 찾은 손님들은 많았지만 정작 물건은 사가지 않았다. 이에 상인들은 또 '일'을 냈다. 전통시장으론 처음으로 시장 전체가 세일을 시작한 것이다. 먼저 매주 수ㆍ목ㆍ금요일에 손님이 가장 많이 찾는 품목을 골라 '도깨비세일'을 진행했다. 시장 한복판에 설치한 판매대에 각 점포의 인기 품목들을 올려놓고 20~30% 싸게 팔고,명절에 앞서 대대적인 할인행사도 벌였다. 윤종순 상인협회장은 "품질과 가격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산지 공동구매 방식을 도입했다"며 "예전에 하루 2000명 미만이던 방문 고객이 평일 9000명,주말엔 1만5000명으로 늘었다"고 설명했다. 점포당 하루 매출은 평균 150만원에 달한다.

이후 전국 재래시장 상인들이 벤치마킹을 위해 도깨비시장으로 몰려왔다. 2006년엔 서울시가 선정한 '우수 재래시장'에 올랐다. 윤 회장은 한달에 두차례 이상 성공사례를 강연하러 다니는 인기 강사가 됐다.

도깨비시장의 진화는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지난 10일 상인협회 사무실에선 '도깨비시장 주차장 주민 설명회'가 열렸다. 상인협회는 차량 100여대를 세울 수 있는 1900㎡(590평) 규모 주차장을 만들 계획이다. 이미 시장 서쪽의 빌라 5동을 사들여 내년 초 착공해 9월께 개장할 예정이다. 윤 회장은 "아무리 (정부의)지원을 많이 받아도 상인들이 한 마음으로 뭉쳐 신속하게 바꿔나가지 않으면 도태될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최진석 기자/양승석 인턴(한국외대 2학년) iskr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