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기자의 1일봉사 체험기] 박민제기자 "노숙자 동전 한닢에 꽁꽁 언 마음 녹더군요"
-
기사 스크랩
-
공유
-
댓글
-
클린뷰
-
프린트
구세군 자선냄비
꼬깃꼬깃 지폐한장에 쑥쓰럽다며 천금같은 미소얻는 사람들 줄이어…
8시간 모금활동…무거워진 냄비보며 내마음은 왜그리 가볍던지…
10년은 더 입은 듯 보이는 꾀죄죄한 점퍼와 '몸빼바지'.눈가에 자글자글한 주름과 몇년은 감지 않았을 법한 산발한 머리.얼핏봐도 70대의 노숙자로 보이는 노인은 굽은 허리를 손으로 감싸고 힘들게 빨간냄비로 다가왔다. 주머니춤에서 꺼낸 동전 한닢.'땡그랑' 소리와 함께 냄비 속으로 떨어진 동전에는 고액권 지폐가 보여주지 못한 감동이 담겨 있었다.
2008년 겨울 대한민국은 결코 춥지 않았다. 기자가 '구세군 자선냄비' 일일자원봉사자로 나선 것은 지난 9일 낮 12시부터 오후 8시까지.서울 명동거리에서 빨간 자선냄비와 함께 한 8시간은 아무리 살림살이가 힘들어도 대한민국엔 희망이 있음을 체감케한 시간이었다.
구세군 버스가 명동 대로변에 도착한 것은 낮 12시께.구세군 사관학생들과 함께 빨간 점퍼를 걸치고 '사랑의 종'을 든 채 자선냄비 앞에 섰다. 모금활동에 함께 나선 사람은 구세군 사관학교 생도인 이문재씨(40)와 박충실씨(31).'딸랑딸랑' 경쾌한 종소리가 울려 퍼지자 사람들의 시선이 쏠렸다. 민망함으로 얼굴이 붉어졌지만 이내 이어지는 기부자들의 행렬에 자신감이 솟았다. 빨간냄비를 찾는 사람들의 신분은 천차만별이었다. 어린아이부터 손잡은 젊은 연인과 노숙자까지.신분은 달랐지만 돈을 넣은 뒤 환한 미소를 지으며 떠나는 뒷모습이 아름다운 것은 똑같았다.
처음엔 경기가 어려워 모금이 여의치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아니었다. 이어지는 기부자의 발길은 불황을 무색케했다. 구세군에 따르면 모금액은 불황 때 오히려 늘어난다고 한다. 보통사람들의 소액 기부가 더 늘어나기 때문이란다.
이렇게 모인 돈은 노숙자,소년소녀 가장 등을 위해 쓰인다. 박씨는 "자선냄비 모금액은 외환위기 때 오히려 더 많았다"며 "올해도 예년보다 많은 성금액이 걷히고 있으며 목표액인 32억원을 무난히 달성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지는 기부행렬에 시간가는 줄 모르고 종을 치다 보니 어느덧 명동 거리에 어둠이 깔렸다. 구세군 악대가 크리스마스 캐럴을 연주하자 사람들의 기부행렬은 더 늘었다. 오후 8시가 되자 구세군은 무거워진 자선냄비를 옮기고 철수할 준비를 시작했다. 20년간 모금활동을 해왔다는 박씨는 힘들지 않느냐는 질문에 "일면식도 없는 사람들이 남을 위해 스스럼 없이 자신의 돈을 내는 것을 보면 순간 순간이 감동"이라고 말했다.
'사랑하는 것은 사랑을 받는 것보다 행복하다. ' 집으로 향하는 내내 유치환 시인의 시 '행복'이 떠올랐다.
구세군 자선냄비 봉사활동 신청 (02)720-4727
박민제 기자 pmj53@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