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사는 남이 아니라 자기 자신을 위해서 하는 겁니다. "

지난 9일 오전 6시 서울 청량리역 앞 밥퍼 센터. "어려운 이웃을 돕기 위해 일일봉사체험을 하러 왔다"고 하자 자원봉사자인 임승혁씨(트럭운전기사)가 대뜸 이렇게 충고했다. "남을 위해 희생한다는 생각을 가지면 봉사활동을 하기 힘들다"는 게 이유였다.

최일도 목사가 '세상에 밥 굶는 이 없는 날까지'라는 모토로 독거노인,노숙인 등 불우한 이웃에게 매일 점심을 대접하는 '밥퍼-다일공동체'.이른 아침부터 식당 앞에는 봉사활동을 나온 하이트ㆍ진로 지점의 직원 20여명이 식사 준비를 위해 마늘을 까고 있었다. 슬그머니 그들 틈에 끼었다.

마늘 까기가 끝난 후 떨어진 임무는 무채 썰기.생각보다 단단한 무를 얇게 써는 일이 쉽지 않았다. 옆을 보니 나이가 지긋한 남자분이 번개같은 손놀림으로 채를 썰고 있었다. 혹시 직업이 요리사인지 궁금해 물었다. 그러자 최명수씨(하이트ㆍ진로 직원)는 크게 웃으며 "여기 자주 나오면 누구나 이렇게 할 수 있다"고 말했다.

정신없이 다음 날 반찬재료인 무채를 썰다 보니 어느덧 11시.배식을 시작하기 전 봉사자들은 일렬로 늘어섰다. '사랑합니다''고맙습니다''행복하세요'. 평소 너무나 쉽게 내뱉는 이 말들이 그날따라 깊은 울림으로 가슴에 다가왔다. 왠지 모르게 경건한 마음에 손이 가운데로 모아졌다.

이날 반찬은 감자 볶음과 두부조림,김치,김치찌개.정성이 담긴 음식이어서 그런지 집에서 만든 것처럼 간이 아주 잘 맞았다.

배식방식은 철저한 분업시스템.각 반찬과 음식을 사이에 두고 양쪽에 두 사람이 마주보고 선 뒤 식판을 받아 자기가 맡은 음식을 담아 옆 사람에게 넘긴다. 각 파트 중 국 푸는 일이 가장 힘들다고 해서 자청해서 국 푸는 일을 맡았다.

처음에는 별일 아닌 것처럼 생각했는데 20분도 되지 않아 손이 저리기 시작했다. 얼마 전 다친 왼팔이 국자의 무게를 감당하지 못해 국물을 여기저기에 흘렸다. 어떻게 이렇게 힘든 일을 계속 할 수 있느냐고 묻자 신분 밝히기를 한사코 거부한 한 자원봉사자 로부터"일을 하지 않으면 오히려 몸이 더 아프다"라는 말이 돌아왔다. 길을 가다 좋은 일을 하는 것을 보고 무작정 돕기 시작한 게 벌써 5년째.이제는 집에서 쉬는 날이면 마음이 무겁고 몸이 불편할 정도라고 한다.

배식을 하며 틈틈이 식사하고 있는 사람들을 바라보았다. 모두들 삶의 고통을 짊어진 듯했다. 정신없이 밥을 먹고 있는 그들의 모습을 보면서 하루 세끼 끼니 걱정 없이 사는 것만으로도 얼마나 축복받은 삶인지 생각하게 됐다. 밥퍼가 주는 희망은 더 나은 미래에 대한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현재의 삶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깨닫게 해주는 것이었다.

밥퍼-다일공동체 (02)2214-0635,2214-0652

이재철 기자 eesang69@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