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경제의 성장엔진 역할을 해온 중국이 각국의 성장동력을 소진시키는 블랙홀로 전락할 처지에 놓였다. 무역액이 줄어들면서 중국에 진출한 외국기업이나,한국 대만처럼 대중(對中) 수출 비중이 큰 국가들의 리스크를 키우고 있다는 지적이다.

지난달 중국의 무역지표는 이 같은 우려를 부추기고 있다. 11월 수출은 1149억달러로 전년 동기보다 2.2% 줄었다. 2001년 6월 이후 7년 만의 첫 감소로,감소폭은 1999년 4월 이후 최대다. 10월만 해도 수출은 19.2% 증가했었다. 중국은 세계무역기구(WTO) 가입 이듬해인 2002년부터 6년간 수출을 매년 20~30% 늘리면서 세계경제 성장에 기여해왔지만 이 같은 선순환에 빨간 불이 켜진 것이다. 수출 감소는 중국 진출 외국 기업에 큰 타격이다. 현지 외국 기업들은 중국 수출의 절반 이상을 맡고 있다. 또 수출 감소는 원자재 등의 수요 감소로 이어지고 있다. 11월 수입은 17.9% 줄어든 749억달러에 그쳤다. 1993년 이후 최대폭의 수입 감소는 한국 대만 등 중국 수출 비중이 큰 국가들의 성장을 위협하고 있다.

메릴린치는 최근 내년 세계경제 성장에서 중국이 기여하는 비중이 60%에 달할 것이라고 전망했었다. 미국 일본 유럽 등 선진국 경제가 일제히 마이너스 성장으로 돌아서지만,중국이 버팀목 역할을 할 것이라는 분석이었다. 하지만 중국의 11월 무역지표는 이 같은 기대는커녕 중국이 되레 세계경제의 경착륙 리스크를 높일 것이라는 우려를 낳고 있다. 영국 경제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중국의 수출입이 심각하게 위축되면서 세계경제 전반에 큰 충격을 가져다줄 수 있다"고 분석했다. 세계은행도 최근 선진국의 수입 수요를 상쇄할 완충재 역할을 중국 등이 해왔는데 내년에는 이를 기대하기 힘들게 됐다고 지적했다.

한국 경제가 1997년 외환위기 이후 빠르게 회복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중국으로의 수출 증가가 있었다. 그러나 이제 중국은 한국 대만 일본 싱가포르 홍콩 등의 리스크 요인이 되고 있다.

물론 중국 정부의 경기부양책으로 중국의 수입이 다시 늘어날 것이라는 기대도 있다. 중국 정부는 최근 경제공작회의에서 내수 확대를 통한 빠른 경제성장 지속을 내년 최우선 과제로 정하는 한편 △적극적인 재정정책과 통화완화 정책 △농민 수입 증대 △소비확대 등 경제구조 고도화 △가격체제 개혁 △사회안정 유지 등을 5대 중점과업으로 채택했다. 그렇지만 물가하락 속 경기침체가 특징인 디플레 우려가 커지고 있어 소비가 늘어날지는 불투명하다.

오광진 기자 kjo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