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름값 한때 2000원까지 치솟아, 고환율로 기러기 아빠들 등골휘고, 키코피해 기업 눈덩이

리먼 쇼크로 시작된 주가하락 내년에 속시원히 오르면 좋으련만…

올 한 해 재테크 기상도는 한마디로 '흐림'이었다. 지난해 코스피지수가 2000을 넘어서자 부푼 꿈을 안고 펀드 투자에 나섰던 재테크족들은 세밑에 반토막 난 계좌를 들여다보며 망연자실하고 있다. 자식을 유학보낸 기러기 아빠들은 고환율에 등골이 휠 지경이었고 은행에서 주택담보대출을 받은 서민들은 무섭게 치솟는 대출 이자에 한숨을 내쉬었다. 정신없이 흘러갔던 2008년을 분기별로 정리해 봤다.

◆새정부 출범

1897.13포인트로 시작한 주가는 2일 새해 첫 장이 열리자 마자 1853.45로 43.68포인트 하락하며 불안한 출발을 보였다. 2월들어서는 1700선마저 무너져 내렸다. 그러나 작은 반전은 항상 있는 법.2월25일 이명박 대통령 취임일에는 '새정부 출범 첫날에는 주가가 하락한다'는 징크스가 깨지며 1700선을 재돌파했다. '7ㆍ4ㆍ7공약'(연평균 7% 성장,1인당 국민소득 4만달러,세계 7위 경제대국)을 실천하고 주가를 3000까지 끌어올리겠다던 그의 말에 시장이 어느 정도 기대를 보였던 셈이다.

하지만 3월 들어 주가는 1500선까지 떨어졌다. 2월 말에는 서부텍사스산원유(WTI) 가격이 배럴당 100달러를 넘어서며 세계를 '고유가 공포'에 떨게했다. 물가가 뛰며 서민들이 즐겨찾는 '1000원 숍'이 문전성시를 이뤘다. 900원대 중반에 머물던 원ㆍ달러 환율이 3월17일 1029원까지 뛰며 고환율 시대의 서막을 알렸다.

◆고유가에다 고환율까지 '2중고'

4월 들어 서울 시내 주유소 휘발유값이 ℓ당 1700~1800원대를 오고갔다. 경유값도 크게 올라 휘발유값에 근접하기 시작했다. 5월에는 WTI 가격이 140.39달러까지 올라 처음 140달러 선을 돌파하면서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때문에 국내 주유소 중에는 휘발유값과 경유값 모두 ℓ당 2000원 이상을 받는 곳까지 등장했다. 주유소 가격비교 사이트에는 조금이라도 싸게 기름을 넣으려는 사람들이 시간당 300만명까지 몰려 서버가 다운되기도 했다.

외환파생상품인 키코(KIKO)의 폐해가 수면 위로 올라온 시기도 5월이다. 외환 딜러들 사이에서는 정부가 인위적인 고환율 정책을 펴고 있다는 소문이 돌았다. 환율이 심상치 않다는 것을 전문가들뿐 아니라 일반 사람들도 느끼기 시작한 때이다.

5~6월에는 촛불시위로 나라가 한창 시끄러웠다. 하지만 이 와중에도 5월16일에는 코스피지수가 연중 최고인 1888.88을 기록했으며 5월19일에는 장중 한때 1900선을 돌파하기도 했다.

◆리먼 쇼크

3분기는 9월 위기설이 지배했다. 외국인들이 9월에 만기가 돌아오는 채권을 모두 팔고 나가면 환율과 금리가 폭등하고 금융기관과 기업들이 줄도산할 것이라는 시나리오였다. 과정은 빗나갔지만 결과는 맞았다. 우리 시장의 기초체력(펀더멘털)과 무관한 외부적 요인이 9월 위기설을 현실화 시킨 것이다.

추석 연휴 마지막날이 9월15일.미국 3위의 투자은행(IB)인 메릴린치가 뱅크 오브 아메리카(BOA)에 전격 인수되고 유동성 위기를 겪어온 4위 IB인 리먼 브러더스가 새 주인을 찾지 못해 파산보호를 신청했다는 소식이 날아들었다. 다음 날 한국 금융 시장은 미국보다 더한 공황 상태에 빠졌다. 주식시장이 열리자 마자 주가는 곤두박질쳤고 개장 40분이 채 안돼 코스피,코스닥 시장에서 모두 사이드카가 발동됐다. 코스피는 주말보다 90.17포인트,6.1% 폭락한 1387.75에 거래를 마쳤다. 역대 세 번째 하락폭이었다. 코스피,코스닥 시장을 합쳐 하루만에 51조원의 시가 총액이 증발했다.

◆한은 기준금리 1%포인트 인하

4분기 들어 마침내 코스피지수 1000선이 무너졌다. 10월24일 938.75포인트를 기록하며 연중 최저치를 경신했다.

환율 폭등도 계속됐다. 한국은행은 10월30일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와 300억달러 규모의 통화 스와프 계약을 체결했지만 효과는 한 달도 가지 못했다. 11월20일 환율이 1497원을 기록하며 스와프 계약 체결 직전인 10월28일 환율 고점(1467원)을 넘어섰다. 11월24일에는 1513원으로 연중 최고치를 기록했다.

12월11일 한은은 기준금리를 1%포인트 인하하는 초강수를 뒀다. 10월 말에 0.75%포인트를 내린데 이어 11월도 0.25%포인트를 인하했지만 경기 침체가 가속화되자 충격요법을 쓴 것이다. 시장에서는 제때 대처를 못하던 한은이 '뒷북치기'를 하고 있다는 반응이 나왔다.

부동산시장에선 말도 많고 탈도 많던 종합부동산세가 사실상 유명무실해졌다. 헌법재판소는 11월13일 종부세 위헌소송 선고에서 세대별 합산과 주거목적 1주택 장기보유자 부과 규정에 대해 각각 위헌과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렸다. '다사다난'이라는 말이 잘 어울리는 한 해였다.

이태훈 기자 bej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