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줄곧 증시에 '매물 폭탄'을 쏟아냈던 외국인의 주식 매도 공세가 연말에 접어들면서 진정되는 양상을 보여 관심이다.

외국인은 최근 3주 사이에 7000억원가량의 주식을 사들였다. 특히 이달 들어선 월간 기준으로 7개월 만에 매수 우위를 보이고 있다. 올해 월평균 3조원 정도씩 총 34조원어치의 주식을 팔아 주가를 반토막내고 자금을 빼가는 과정에서 원ㆍ달러 환율 급등을 초래했던 그동안의 패턴과는 확실히 달라진 모습이다.

그렇다면 이제 외국인의 무차별 주식 매도는 막을 내리는 것일가. 전문가들은 글로벌 금융위기가 어느 정도 진정되면서 예전 같은 대량 매물 공세는 마무리된 것으로 보이지만 그렇다고 매수로 전환할 것으로 기대하기는 어렵다고 분석했다.

내년 글로벌 금융시장과 경기 침체가 더 심화될 경우 투자자금을 회수하기 위한 외국인의 매도가 재개될 것이란 관측이 우세하다.

◆원ㆍ달러 환율 하락따라 매도 멈춰

외국인이 소폭이나마 순매수를 보이는 배경으로는 우선 원ㆍ달러 환율 하락(원화 강세)이 꼽힌다. 실제 외국인의 이번 매수 움직임은 환율이 1515원으로 고점을 찍은 뒤 다시 1400대로 하락한 지난달 26일부터 시작됐다.

장영우 UBS증권 대표는 "환율이 상승세면 외국인은 보유 주식의 달러 기준 가치가 줄어들기 때문에 환율이 더 오르기 전에 주식을 처분하자는 압박감을 느끼게 된다"며 "환율이 고점을 찍었다는 판단이 매도 중단의 배경"이라고 설명했다. 외국인으로선 주가가 변하지 않더라도 지금처럼 환율이 하락하면 보유 주식의 달러 환산 가치가 높아지기 때문에 서둘러 매도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김학주 삼성증권 리서치센터장도 "외국인이 미국 중국 일본 등과의 통화 스와프 계약과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 당선인의 적극적인 경기 부양 행보 등에 힘입어 한국 경제가 최악으로 빠질 가능성이 크게 줄었다는 판단에다 환율이 안정되면서 조심스러운 매수 움직임으로 나타나고 있다"고 진단했다.

연말 결산효과도 매물 감소의 원인이다. 특히 외국인 매도세의 주력이던 헤지펀드들의 결산이 끝나가고 있는 것이 중요한 요인으로 꼽힌다.

김은수 PCA자산운용 전무는 "올 결산을 앞둔 헤지펀드 투자자들의 4분기 환매 신청이 지난달 15일까지 대부분 마무리돼 주식을 서둘러 처분할 이유가 적어졌다"고 설명했다.

서영호 JP모간증권 전무도 연말 결산효과를 지목했다. 그는 "주식을 보유해야 연말 배당을 받을 수 있는 데다 새해에는 주가가 오르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펀드매니저들은 연말이면 주식을 갖고 새해를 맞으려는 경향을 보인다"고 지적했다.

서 전무의 설명대로 한국 증시에 투자하는 외국인은 매년 12월에는 우호적인 매매 행태를 보여왔다. 2006년 12월엔 8개월 만에 매수로 전환했고 작년 12월에는 매도 규모를 11월의 30%로 줄였다.

◆'바이 코리아'는 기대 말아야

여러 정황으로 볼 때 금융위기를 맞아 유동성 확보에 주력 중인 외국인 투자자들의 매물 공세는 마무리 단계라는 게 증권가의 시각이다.

백재욱 JP모간 주식본부장은 "외국인은 시급한 현금 확보를 위해 팔 만한 주식은 거의 정리했다고 봐야 한다"고 전했다.

특히 외국 헤지펀드의 활동이 크게 위축된 점이 고무적이다. 금융감독원 관계자는 "올해 외국인 매물 중 헤지펀드의 비중이 30%를 웃돌았는데 요즘 동향을 집중 점검해 본 결과 4분기 이후 헤지펀드 매물이 크게 줄었다"며 "연말 결산을 앞둔 투자자들의 펀드 환매 요청이 마무리된 것으로 판단된다"고 말했다.

에릭 피시위크 CLSA 수석이코노미스트는 "한국만큼 유동성이 풍부한 신흥 증시가 없기 때문에 환매 요청에 몰린 헤지펀드들이 손실률을 최소화화며 자금을 확보할 수 있는 시장이 한국"이라며 "글로벌 위기로 헤지펀드의 활동이 크게 위축된 점이 한국 증시엔 우호적"이라고 진단했다.

원ㆍ달러 환율이 3주째 내림세로 1300원대에 진입한 것도 긍정적이다. 동양종금증권 분석에 따르면 지난 10월 이후 환율이 오르면 주가가 떨어지고 환율이 내리면 주가가 오르는 확률이 80%에 달한다.

일시적인 매도 중단을 넘어서 최근 4년간 72조원의 매물을 쏟아냈던 거대한 매도흐름 역시 막바지라는 분석도 나온다. 김학주 센터장은 "4년전 44%까지 치솟았던 외국인 지분율이 28%로 크게 낮아져 이제 팔 주식도 많지 않다"고 분석했다.

외국인은 2005년 3조200억원,2006년 10조7000조원,2007년 24조7000억원에 이어 올해도 34조여원으로 매물을 급증시킨 데다 주가도 급락해 작년 말 308조원이던 보유 시가총액이 지금은 171조원으로 쪼그라들었다. 임정현 부국증권 연구원은 한발 더 나아가 "낮은 주가와 높은 배당수익, 환차익 등을 감안할 때 글로벌 신용위기가 완화되는 단계에 이르면 과거와 같은 '바이 코리아'가 재연될 가능성도 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국내외 경제 상황의 불확실성이 워낙 커 외국인이 대량 주식 매수에 나서기는 힘들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한 외국계 증권사 관계자는 "한국에 투자하는 외국 펀드매니저들의 말을 들어보면 '팔 만한 건 어느 정도 팔았다'면서도 바닥을 확인하기 전에 굳이 지금 한국 투자 비중을 늘리려는 사람은 거의 없다"고 전했다.

이재원 ABN암로 부대표도 "외국인은 한국의 거시경제지표가 악화되며 주가가 내년에 더 떨어질 걸로 예상하고 있어 환율이 하락해도 큰 매수를 보이기는 힘들다"고 진단했다.

백광엽/김재후 기자 kecore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