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가 있는 갤러리] 김광규 '산이 보이는 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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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 밖으로 백련산 검푸른
숲 보인다
하늘과 맞닿은 밋밋한 산등성이
나뭇가지들 바람에 손짓한다(…)
바람 자는 날에는
고요가 어떻게 생겼는지
보이기도 한다
병실에 혼자
또는 산과 둘이 있노라면
오랫동안 헤매던 숲과 계곡에
숨겨진 세월의 뒷모습도 떠오른다
그 동안 얼마나 먼 곳을 방황했나
나는 그저 여기에
있을 뿐인데
-김광규 '산이 보이는 방'부분
마음이 호수처럼 가라앉아 있다. 고요하고 평온하다. 세상에 대해 한 점 미련이 없기 때문이다. 모든 욕심과 기대를 버린 덕이다. 돌을 던져도 잠시 파문이 일다가 다시 잠잠해지리라.병실 창 밖으로는 산 풍경이 펼쳐진다. 숲과 계곡을 오랫동안 헤매다가 마침내 찾아낸 '있는 그대로의 산'이다. 바람 자는 날에는 고요의 모습까지 보인다고 했다. '나는 그저 여기에 있을 뿐'이라는 깨달음.혼탁한 세상과 뒤엉킨 채 하루하루를 간신히 살아가고 있는 우리는 언제 이런 깨달음을 얻을까. 그런 때가 오기는 올까.
이정환 문화부장 jh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