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돈암동에 사는 김모씨(67)는 요즘 지병인 위염이 더 악화됐다. 지난해 12월 동네 은행에서 가입했던 역외펀드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고 있기 때문이다. 김씨는 며칠 전 "펀드를 해약하려면 120만원을 가지고 오라"는 은행 직원의 전화를 받고 귀를 의심했다. 주가하락으로 원금 1000만원 중 250만원만 남았는데 선물환 거래에서 손실이 나서 돈을 더 물어내야 한다는 설명이었다. 펀드를 1년 더 연장하려면 500만원 가까운 추가 비용이 든다는 말에 그는 수화기를 떨어뜨릴 뻔 했다.

그는 "주가가 떨어져서 손실을 입은 건 이해할 수 있지만 환율이 올라서 남아있는 원금으로도 환차손을 못 메울 지경이 됐는데 '만기'가 다 돼서야 알아서 하라는 식으로 일방적으로 통보하는 건 너무 심하다"며 분통을 터뜨렸다. 김씨는 "며칠 새 건강까지 부쩍 나빠져 차라리 120만원을 내고 깨끗하게 잊어야 하나보다"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펀드 판매사의 사후 서비스가 도마에 올랐다. 특히 지난해 역외펀드를 집중적으로 팔았던 은행들이 비난을 받고 있다. 김씨처럼 환율 급등으로 손실폭이 원금을 웃도는 경우가 속출했는데도 이를 투자자들에게 제대로 알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러고도 매년 펀드자산의 1~2%를 은행이 판매보수로 꼬박꼬박 챙길 자격이 있는 것인지 비판의 목소리가 커지는 것은 당연하다. 급기야 역외펀드 선물환 계약으로 피해를 본 일부 투자자들은 판매사를 상대로 소송 준비에 들어갔다.

지난 10월 말 기준으로 전체 펀드 계좌 수는 2386만개에 달해 가구당 2개 수준에 육박한다. 펀드 대중화 시대라고 할 수 있지만 질적인 발전은 아직 멀었다는 평가다. 특히 역외펀드 사례에서 보듯 판매사들이 펀드를 팔기에만 급급할 뿐 사후 서비스엔 소홀한 경우가 허다하다. 은행예금만 해온 70세 가까운 고객에게 위험도가 높은 해외 주식형펀드를 아무렇지 않게 권하는 무리한 영업행태는 시급히 바로잡아야 한다.

내년 2월부터 자본시장통합법이 시행되면 펀드 판매사는 투자자에게 판매보수별로 어떤 서비스를 제공하는지 내역을 소상히 밝혀야 한다. 투자자 보호를 위해 판매사가 져야 하는 책임범위도 훨씬 넓어진다. 펀드 판매사가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할 때다.

박해영 증권부 기자 bon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