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록 불경기이지만 한 해를 보낸 아쉬움을 달래야 하는 연말 송년회 자리에서 술잔을 주고받는 풍경은 매년 같다. 연말에는 그만큼 술을 먹는 자리가 늘어난다는 얘기다. 대한주류공업협회에 따르면 지난 9월 한 달간 소주는 전년 동기 대비 7.9%,맥주는 6.9%나 판매량이 늘었다니 우울한 경제상황을 감안하면 이번 연말 폭음할 직장인이 많아질 분위기다. 술이 각 장기에 미치는 폐해가 많으나 간 신장 뇌 등에 비해 상대적으로 덜 알려진 췌장의 위험을 이동기 연세대 영동세브란스병원 소화기내과 교수의 도움말로 알아본다.


◆췌장의 역할과 췌장염

췌장은 명치보다 약간 아래 등쪽에 위치해 있는 장기로 음식물의 소화와 흡수에 필요한 소화효소와 체내 대사를 조절하는 호르몬의 분비를 담당한다. 위의 뒤에 있고 십이지장과 연결돼 있으며 간과 비장이 인접해 있다.

급성췌장염은 담즙 등 췌장에서 분비된 효소가 췌장 안으로 역류해 췌장조직 자체를 소화시켜 녹이는 염증이다. 정도가 약하면 가벼운 부종만 일어났다가 쉽게 낫지만 심하면 췌장이 터져서 주변의 장기를 녹이는 위험한 상태를 유발할 수 있다. 그래서 중증이면 사망률이 10~15%에 이른다. 증상은 상복부에 극심한 통증을 호소하는데 통증이 어깨와 가슴,등 쪽으로 퍼져나가는 특징을 보인다. 심한 경우에는 구토와 발열,식은땀,복부 주위 피부의 피멍 같은 증상을 동반한다. 발병 원인으로는 담석증이 30~75%,음주가 약 30%를 차지한다.

만성췌장염은 급성췌장염이 오래되어 생기는 게 아니라 발생 과정이 다른 별개의 질환이다. 알코올 등에 의해 췌장 조직이 섬유화되면서 췌장 실질이 위축되는 것이다. 마치 간질환이 간경변이 되는 것과 유사하다. 알코올이 전체 유발 원인의 70~80%를 차지한다. 소량의 술이라도 매일 5년간 마시면 생길 수 있다. 같은 술에 의한 췌장염이라도 평소 술에 약한 사람이 요즘 같은 연말에 폭음하면 급성췌장염,알코올중독자나 애주가가 장기간 음주해 생긴 것이라면 만성췌장염일 공산이 크다.

◆급성췌장염 12월에 많아

영동세브란스병원 소화기내과에서 2006년 초부터 2008년 11월까지 췌장염 환자 302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급성은 141명,만성은 161명이었다. 만성췌장염은 특별한 증가 추세가 없는 반면 급성췌장염은 2006년 34명에서 2008년 65명으로 약 2배 늘어났다. 성별은 남성이 68%(96명)로 여성(45명)의 2배가 넘었다. 여성은 남성에 비해 알코올 분해능력이 적어 남성보다 적은 양의 음주를 했을 때에도 쉽게 급성췌장염이 올 수 있으므로 주의해야 한다. 급성췌장염 환자의 절반가량인 49%(69명)가 알코올이 원인이었으며 담석은 19%(27명)였고 나머지 32%(45명)는 고지혈증 복부외상 고칼슘혈증 약물감염 등이었다. 급성췌장염의 주원인이 과음이다보니 2006년과 2007년 조사를 보면 연중 12월에 급성췌장염 환자가 가장 많았다.

◆초기 대처와 치료

췌장염은 특징적 증상과 통증의 양상으로 비교적 쉽게 알아챌 수 있으나 담석과 혼동될 수 있다. 췌장 상태와 합병증 동반 여부 등을 확인하기 위해 복부 초음파 및 컴퓨터단층촬영(CT) 등을 시행한다. 만약 담석이 발견되면 역행성담관췌장조영술(ERCP)을 한다.

대부분 급성췌장염은 통증치료와 금식 및 수액요법으로 수일 내 회복될 수 있다. 그러나 중증일 경우 쇼크,저산소증,신장기능 저하,췌장 괴사,물혹(가성낭종) 등의 합병증이 발생하므로 전문적 치료가 필요하다. 급성췌장염은 치료되더라도 췌장에서 분비된 호르몬에 의해 췌장이 심한 손상을 입으면 인슐린 생산이 저하돼 당뇨병으로 진행될 수 있다.

정종호 기자 rumb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