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부터 모범보이는 차원서 대통령 전용기 사업 전액 삭감
예산심사위원들 전문성 부족 굽실거리는 공무원들 뒤에선 웃어"


"돈만 풀면 경제가 잘 된다는 건 무식한 소리예요. "

지난 13일 여야간 협상 난항에도 뚝심으로 내년도 예산안을 통과시킨 이한구 국회 예산결산특위 위원장은 15일 한국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자신이 딜레마에 빠졌었다고 말했다. 자신은 재정건전성을 중시하는 사람인데 워낙 경제가 어려우니 재정적자 확대가 불가피했다는 얘기였다. 이 위원장은 하지만 "중장기적으로 재정지출이 생산성 증가로 이어질 수 있는 분야에 예산을 집중시키기 위해 노력했다"고 말했다. 2주에 걸친 예산심사 과정에 지친 탓인지 그는 다소 수척해보였지만 표정에서는 정쟁에 휘둘리지 않고 무난히 예산안을 통과시켰다는 당당함이 묻어났다.

▶내년도 예산안을 평가하자면.

"워낙 실물경제가 하루가 다르게 나빠지고 있어 재정적자는 불가피했다. 하지만 재정지출이 생산성 증가로 이어져 몇 년 후에는 세수가 늘어날 수 있도록 고민했다. 예컨대 금융시장 안정,중소기업 지원 등에 예산을 집중했다. 하천정비의 경우 수재예방 효과도 있고 지방경기 활성화를 위해 필요하다. 특히 국토해양부에 기계보다는 사람을 많이 쓰는 방식으로 공사를 하라고 조건을 달았다. "

▶정부의 경기부양대책 규모가 선진국에 비해 부족하다는 말들이 나온다.

"동의하지 않는다. 미국,유럽은 불난 집이고 우리는 아니다. 게다가 그 나라들은 재정에 문제가 생기면 돈 찍어내면 되는 나라들이다. 똑같이 따라가다가는 바보 된다. 돈 안 쓰고 경제불황에서 탈출하는 방법을 강구해야 한다. 만약에 공적자금이 또 나간다면 이번엔 '공짜자금'이 되지 않도록 정말 무섭게 해야 한다. 건설업계 등 다 손 내밀고 있는데 이익 날 때는 혼자 재미 보고 손해나면 국민에게 부담지우는 건 말이 안 된다. 그래서 공공부문에 출자해 주면서도 구조조정 약속을 다 받았다. 약속을 지키지 않으면 예산을 집행하지 말라고 기획재정부에 압력을 행사할 계획이다. "

▶ 고통분담을 해야 한다는 얘기인가.

"그렇다. 청와대 예산을 삭감한 것도 고통분담에 대해 모범을 보여야 한다는 뜻이다. 사실 비서동 신축은 해야 하는 사업이다. 안전진단에서 D등급을 받았다. 하지만 어려우니 1년만 더 참으라는 거다. 대통령 전용기도 필요하지만 일단 대한항공,아시아나 항공에서 조금 더 빌려타라는 얘기다. "

▶일자리 창출 예산은 충분하다고 보나.

"충분치 않다. 그래서 일자리 늘릴 프로그램만 있으면 얼마든지 받아주겠다고 했다. 그렇게 나온 게 4조8000억원 증액이다. 예를 들어 국토대청소 프로젝트는 좋은 사례다. 산이나 강,바다에 쓰레기를 다 청소해야 한다. 국가 차원에서 어차피 해야 할 일,이번 기회에 해두면 두고두고 좋을 일들을 진행하면서 일자리도 늘리자는 거다. "

▶예결특위의 상임위화 필요성이 힘을 얻는 것 같다.

"1년 임기의 예결특위 위원들이 전문성이 없다보니 공무원들이 앞에선 굽실거리지만 뒤에선 우습게 본다. 전문가들에게 연구 용역을 맡겨 뒀다. 내년 2월에 결과가 나오면 예산결산심사 제도를 대폭 손볼 방침이다. "

▶지난 12일 7시간가량 행방이 묘연했다.

"내가 사라져서 여야간 협상이 안 됐다고 하는 건 말이 안 된다. 국회 예결위원장이 왜 여야간 협상에 끼어드나. 회담 결과만 기다렸다가는 시간 내에 마무리 못할 것 같다고 판단했다. 예산을 확정짓기 위해 정부 관계자들과 다른 곳에서 필요한 작업을 했다. 결정할 거 결정하고,그리고 쉬고 그랬다. "

유창재/이준혁/김유미 기자 yoocool@hankyung.com

허문찬 기자 swea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