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을 강요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풀어간 게 적중한 것 같습니다. 과잉 감정으로 관객들을 지치게 만드는 부분을 과감하게 걷어내고 속도감 있게 이야기를 진행시킨 덕분이지요. "

개봉 12일 만에 150만명을 동원하며 흥행 돌풍을 일으키고 있는 코미디 영화 '과속스캔들'의 각본과 연출로 데뷔한 강형철 감독(34)은 이렇게 말했다. 순제작비 25억원의 이 영화는 불황에 신음하는 한국 영화계에서 오랜만에 손익분기점(140만명)을 단숨에 뛰어넘은 의외의 흥행작이다.

극장가에서는 입소문이 갈수록 확산되고 있어 300만명 돌파도 시간 문제로 보고 있다. '오스트레일리아'와 '트와일라잇' 등 할리우드 대작들과 경쟁해 이룩한 성과여서 더욱 뜻깊다.

"1차 관객으로서 감독인 제 스스로가 재미있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영화의 리듬과 감성의 흐름을 해칠 수 있는 장면들을 가급적 뺐죠.결과적으로 식상한 이야기일 수 있는 데도 지루하지 않았다고 관객들은 입을 모으고 있습니다. "

'과속 스캔들'은 30대 중반의 가수 현수(차태현) 앞에 존재조차 몰랐던 20대 초반의 딸 정남(박보영)이 어린 아들 기동(왕석현)을 데리고 나타나면서 벌어지는 '과속 삼대'에 관한 영화.가족 없이 홀로 살던 현수의 정서적 성장,가수의 꿈을 이루려는 정남의 노력,꼬마 천재 기동의 어른스러운 모습 등이 자연스럽게 어우러지며 관객들에게 웃음과 감동을 준다.

"주인공인 남자가 가족의 울타리 안에서 성장하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습니다. 여기에다 음악에 재능있는 사람의 이야기를 덧입혀 온가족의 성장 스토리를 만들었습니다. 단순히 웃음만 주는 게 아니라 공감대를 넓힌 것이죠."

용인대 영화학과를 졸업한 강 감독은 그동안 쓴 시나리오들이 잇달아 퇴짜맞으면서 오랫동안 궁핍한 생활을 겪었다. 제작사 토일렛픽처스의 안병기 감독과도 다른 작품을 진행하다가 투자 유치에 실패한 뒤 4년 전 써놨던 '과속 스캔들'의 초고를 다시 꺼내 들었다. "현장경험이 부족해 모르는 사항은 스태프들에게 물었습니다. 제가 안돼 보였는지 (웃음) 다들 자기 영화라고 생각하고 열심히 해주더군요. "

유재혁 기자 yooj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