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여록] 봉 취급받는 국민종잣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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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권시장 안정펀드 출자는 금융위원회가 사전 협의만 해왔더라도 충분히 검토해볼 수 있는 사안이었습니다. 하지만 아무런 언질없이 '국민연금이 들어올 것'이라고 먼저 발표하는 바람에 되레 참여할 여지가 없어진 거지요. 국민연금에 대한 이해가 부족해도 너무 부족합니다. "
국민연금 관계자는 10조원 규모로 출범하는 채권시장 안정펀드에 참여하지 못한 이유를 묻는 질문에 "정부가 멍석을 걷어가는 바람에 어쩔 수 없었다"며 이같이 말했다. 국민연금이 독립적으로 운용되고 있는지를 가입자 대표들이 눈을 부릅뜨고 지켜보고 있는데 정부 입김에 휘둘리는 것처럼 움직일 수는 없었다는 얘기다. 한마디로 금융위의 오만한 발상이 국민들의 종잣돈 230조원을 굴리는 국민연금의 채권펀드 참여 길을 막은 셈이다.
국민연금에 대한 그릇된 시각은 증권 업계에서도 만연해 있다. '국민연금은 증시를 떠받치는 버팀목' '연말까지 국민연금의 주식 매수여력 8조원' 등 증권사들은 사실상 국민연금의 매수를 부추기는 분석 자료를 쏟아내고 있다. 이는 뒤집으면 증시의 가장 '큰 손'인 국민연금이 있으니 안심하고 주식을 사라는 메시지를 투자자들에게 전하고 있는 셈이다.
그러나 이는 잘못된 정보로 들통날 가능성이 높아졌다. 그토록 믿고 의지(?)하는 국민연금이 내년도 국내주식 비중을 대폭 줄이기로 방침을 정했기 때문이다. 국민연금은 금명간 기금운영위원회를 열고 이 같은 방침을 확정한다. 수익성과 안정성을 최우선시하는 국민연금은 증시 상황에 상관없이 미련하게 주식을 사주는 '봉'이 아니라는 얘기다.
국민연금은 '미다스의 손'이 아니다. 우리와 우리 자식들이 언젠가는 되돌려 받아야 되는 노후자금이다. 실제 국민연금은 2043년에는 2465조원 규모로까지 커지지만 연금 지급이 본격화되는 그 이후에는 급속도로 빠르게 소진될 것으로 예상된다. 이 때가 되면 지금 사들인 주식 모두를 팔아야 될지도 모른다.
국민연금 관계자들이 가장 싫어하는 단어는 바로 '동원'이다. 정책 당국자들은 국민연금이 급할 때 동원할 수 있는 뭉칫돈이라는 생각을 우선 버려야 한다. 국민연금의 성격을 올바로 이해하고 적절한 운용 방향을 제시한다면 국민연금은 지금의 경제 위기를 극복하는 데 엄청난 역할을 해낼 수도 있을 터다.
서욱진 경제부 기자 venture@hankyung.com
국민연금 관계자는 10조원 규모로 출범하는 채권시장 안정펀드에 참여하지 못한 이유를 묻는 질문에 "정부가 멍석을 걷어가는 바람에 어쩔 수 없었다"며 이같이 말했다. 국민연금이 독립적으로 운용되고 있는지를 가입자 대표들이 눈을 부릅뜨고 지켜보고 있는데 정부 입김에 휘둘리는 것처럼 움직일 수는 없었다는 얘기다. 한마디로 금융위의 오만한 발상이 국민들의 종잣돈 230조원을 굴리는 국민연금의 채권펀드 참여 길을 막은 셈이다.
국민연금에 대한 그릇된 시각은 증권 업계에서도 만연해 있다. '국민연금은 증시를 떠받치는 버팀목' '연말까지 국민연금의 주식 매수여력 8조원' 등 증권사들은 사실상 국민연금의 매수를 부추기는 분석 자료를 쏟아내고 있다. 이는 뒤집으면 증시의 가장 '큰 손'인 국민연금이 있으니 안심하고 주식을 사라는 메시지를 투자자들에게 전하고 있는 셈이다.
그러나 이는 잘못된 정보로 들통날 가능성이 높아졌다. 그토록 믿고 의지(?)하는 국민연금이 내년도 국내주식 비중을 대폭 줄이기로 방침을 정했기 때문이다. 국민연금은 금명간 기금운영위원회를 열고 이 같은 방침을 확정한다. 수익성과 안정성을 최우선시하는 국민연금은 증시 상황에 상관없이 미련하게 주식을 사주는 '봉'이 아니라는 얘기다.
국민연금은 '미다스의 손'이 아니다. 우리와 우리 자식들이 언젠가는 되돌려 받아야 되는 노후자금이다. 실제 국민연금은 2043년에는 2465조원 규모로까지 커지지만 연금 지급이 본격화되는 그 이후에는 급속도로 빠르게 소진될 것으로 예상된다. 이 때가 되면 지금 사들인 주식 모두를 팔아야 될지도 모른다.
국민연금 관계자들이 가장 싫어하는 단어는 바로 '동원'이다. 정책 당국자들은 국민연금이 급할 때 동원할 수 있는 뭉칫돈이라는 생각을 우선 버려야 한다. 국민연금의 성격을 올바로 이해하고 적절한 운용 방향을 제시한다면 국민연금은 지금의 경제 위기를 극복하는 데 엄청난 역할을 해낼 수도 있을 터다.
서욱진 경제부 기자 ventur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