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에 근무하는 김모 과장(35)은 요즘 출근길이 즐겁다. 동료들로부터 "한 패션한다"는 칭찬을 곧잘 듣기 때문이다. 김 과장이 옷 잘 입는 사람으로 꼽히게 된 건 지난 10월 초부터다.

삼성전자는 자유로우면서 창의적인 직장 문화를 만들기 위해 넥타이와 정장 대신 '비즈니스 캐주얼'을 기본 근무 복장으로 택했다. 비즈니스 캐주얼 도입 첫 날인 10월 1일.당시 본사로 사용되던 서울 태평로 사옥에는 '정장 반,비즈니스 캐주얼 반'의 진풍경이 펼쳐졌다. "어떻게 입어야 할지 모르겠다"는 직원들의 '원성'도 자자했다. 회사 게시판에는 '면바지를 입어도 되나','라운드티도 괜찮은 지' 등의 질문이 쇄도했다.

일주일 뒤 열린 삼성 사장단협의회에선 제진훈 제일모직 사장이 나서 '비즈니스 캐주얼 입는 법'에 대한 설명까지 했다. 일반 직원들을 대상으로 한 강연도 가졌다. 제일모직의 지원 사격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삼성 임직원을 대상으로 빈폴 등의 브랜드를 30% 할인해줬다. 그럼에도 김 과장 처럼 정장 외에 다른 옷이 없던 직원들은 비즈니스 캐주얼 도입 초기 의류비 지출이 월 60만원에서 100만원으로 늘어나기도 했다.

비즈니스 캐주얼을 입기 시작한 지 석달째인 요즘.직원들 사이에선 "바꾸길 잘했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가장 눈에 띄는 변화는 회의에서 나타난다. 차장급 한 직원은 "정장 차림으로 마주할 때보다 훨씬 회의 분위기가 자연스러워졌다"고 했다. 과거에는 일방적으로 지시를 하고,지시를 받는 느낌이었다면 지금은 솔직하게 의견을 제시하는 분위기가 됐다는 얘기다.

직원들간 대화도 늘어났다. 한 직원은 "입고 온 옷에 대해 서로 조언해 주는 재미가 쏠쏠하다"고 전했다. 다른 직원은 "패션을 고려하다보니 체형 등 자기관리에 대한 관심도 높아졌다"고 소개했다. '어느 임원이 베스트 드레서'라는 말이 돌기 시작하면서 옷에 신경을 쓰는 임원도 많아졌다.

2006년 6월 비즈니스 캐주얼 차림을 먼저 도입했던 SK텔레콤은 복장자율화 효과를 톡톡히 누리고 있다. 지난해 4월부터는 아예 비즈니스 캐주얼이라는 '드레스 코드'도 없앴다. 회사 관계자는 "자유복장일 입었더니 일 중심의 수평적인 문화로 바뀌었다"며 "회의도 팀장이 전달하는 일방형 회의가 아니고 토론을 거쳐 결론을 도출하는 합의형 회의로 변했다"고 설명했다.

김현예 기자 yea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