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관리 꼼꼼한 유디인도 피해…금융사기 파장 확산

버나드 매도프의 금융사기 사건 피해가 전 세계로 확산되면서 세계 증시조차 휘청거리고 있다. 총액 500억달러로 추산되는 이번 폰지(금융피라미드) 사기 사건의 최대 피해자는 명문으로 꼽히는 플로리다 팜비치 골프클럽 회원을 포함한 유명 인사들이다.

15일 뉴욕타임스(NYT) 등에 따르면 회원 자격 요건이 엄격하고 회원 자격을 유지하는 데만 연간 수십만달러가 필요한 팜비치 골프클럽 회원 300명 중 적어도 100명 이상이 고수익을 좇아 매도프 펀드에 투자한 것으로 나타났다. 대부분의 회원들은 유대인으로 돈 관리에 꼼꼼한 부호들이다. 그런데도 꼼짝없이 속은 것은 매도프가 동료 회원인데다,매년 꼬박꼬박 8~10%가량의 수익을 보장했기 때문이다. 매도프가 운용한 헤지펀드는 지난 156개월 동안 단 5개월만 손실을 내면서 투자자들의 신뢰를 쌓았다. 1960년 이후 연평균 수익률이 8%를 웃돈다. 또 전설적인 증권 트레이더였던 데다 나스닥 증권거래소 위원장을 역임한 매도프의 경륜도 '묻지마 투자'를 이끈 한 요인으로 작용했다.

골프장 회원으로 매도프 투자를 중개한 칼 샤피로와 로버트 제이프조차 꼼짝없이 속을 정도로 매도프는 치밀하게 사기 행각을 벌였다. 적어도 100만달러 이상을 갖고 있어야 투자 의사를 표명할 수 있었고,그나마 매도프가 돈을 맡아줄지 여부를 장담할 수 없었다고 골프장 회원들은 전했다. 팜비치 골프클럽에서는 매도프에게 투자하는 게 상당한 특권으로 받아들여지는 분위기였다. 1950년대 유대인들을 위해 설립된 이 골프장은 매년 적어도 수만달러 이상을 자선재단에 기부해야 회원을 유지할 수 있다. 피해를 본 투자자 중 일부는 현금을 확보하기 위해 수백만달러를 호가하는 콘도를 서둘러 매물로 내놓기도 했다.

이들 외에 매도프의 꼼꼼한 성품을 보고 투자한 명사들이 적지 않다. 프레드 윌폰 프로야구 메츠구단주,노먼 브라먼 프로풋볼 필라델피아 이글스 구단주,에즈라 머킨 GMAC 전 회장 등도 피해를 본 것으로 알려졌다. 유에스뉴스앤드리포트 소유주인 모티머 주커먼도 피해를 당했다. 롱아일랜드에서 월스트리트까지 헬리콥터를 함께 타고 가다가 매도프를 알게 된 보카 라톤의 리처드 스프링(73)은 "절대로 실수하지 않을 정도의 치밀한 성격에 감명받아 전 재산 1100만달러를 모두 매도프에게 맡겼다가 쫄딱 망했다"고 말했다.

자선재단도 피해를 입었다. 스티븐 스필버그가 설립한 분더킨더 자선재단은 운용 자산의 상당 규모를 매도프에게 투자한 것으로 확인됐다. 유대인 사회에 정기적인 기부를 해온 차이스패밀리재단은 자산 대부분을 매도프에게 맡겼다가 낭패를 보게 됐다.

스페인 산탄데르은행,프랑스 BNP파리바은행,영국 HSBC은행,일본 노무라홀딩스 등 고객 자산을 맡아 운용하는 금융사들도 매도프에게 투자했다가 사기를 당해 고객들로부터 소송 압력에 시달릴 것으로 예상된다. 이번 사건으로 헤지펀드업계는 치유할 수 없을 정도로 신뢰를 잃게 돼 "헤지펀드가 매도프에게 죽음의 키스를 당했다"는 얘기까지 나오고 있다. 피해자들의 손실 규모가 어느 정도 될지 현재로선 불투명하다. 증권 중개 관련 사기로 피해를 보면 고객당 50만달러씩 증권투자보호공사(SIPC)에서 지급하고 있지만 매도프 고객이 보호대상이 될지 여부는 불확실하다.

뉴욕=이익원 특파원 ik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