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인치 이어 42인치도 LCD가 더 저렴해질듯
삼성 SDIㆍLG전자, 생산중단ㆍ사업 변경 움직임

세계 디스플레이 시장의 양대 축 가운데 하나인 플라즈마 디스플레이 패널(PDP) 산업이 위축되고 있다. PDP와 경쟁해온 액정디스플레이(LCD) 패널 가격이 글로벌 경기 침체의 영향으로 급락하면서 '낮은 가격'이란 PDP의 최대 경쟁력마저 사라지고 있어서다.

세계 PDP 업계 4~5위인 일본의 히타치와 파이오니아는 이미 시장에서 철수했고,2~3위인 삼성SDI와 LG전자는 사업을 재편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1980년대 비디오테이프 표준 전쟁에서 기술적 우수성에도 불구하고 VHS 방식에 밀려버린 베타 방식처럼 PDP의 설 자리가 점점 줄어들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PDP가 LCD보다 비싸져

최근 81㎝(32인치) LCD 패널은 200달러 선이 무너져 190달러대에 거래되고 있다. 200달러 이상의 가격을 유지하고 있는 같은 크기의 PDP 가격이 오히려 높아졌다. 107㎝(42인치) LCD 패널 가격도 빠르게 하락하고 있어 내년 1분기엔 PDP 가격이 더 비싸질 것이란 전망이 나오고 있다.

LG전자는 지난 3분기 실적 발표 때 81㎝ PDP 생산 비중이 앞으로 점점 줄어들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이와 관련,LG전자 관계자는 "81㎝ PDP를 생산하고 있는 A3-1라인을 경쟁력이 있는 대형 PDP 라인으로 전환하는 방안 등을 고민하고 있는 중"이라고 말했다.

문제는 대형 PDP 쪽도 어렵다는 점이다. 삼성SDI는 오는 19일부터 내년 초까지 107㎝(42인치) 이상 PDP를 생산하는 천안공장과 울산공장의 가동을 부분 중단키로 했다. 경기 침체에 따른 판매 정체로 재고 정리가 필요하다는 판단에서다. 이 회사는 현재 디스플레이 산업의 차세대 성장동력이 될 것으로 예상되는 유기발광다이오드(OLED) 사업을 강화하고 2차전지 전문업체로의 변신을 꾀하고 있다.

◆세계적인 PDP 산업의 위축

일본의 히타치와 파이오니아는 사실상 PDP 사업을 포기했다. 히타치는 이달 초 PDP 부문 인력 구조조정을 단행하고 앞으로 업계 1위인 파나소닉으로부터 패널을 조달하기로 했다. 앞서 지난 3월 파이오니아는 계속되는 적자를 견뎌내지 못하고 PDP 사업 철수를 발표했다. 전문가들 사이에서 최고의 화질로 칭송받은 '쿠로'라는 브랜드로 PDP 기술 발전을 주도했던 파이오니아의 항복 선언은 업계에 큰 충격이었다.

PDP에 '올인'했던 파나소닉도 변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이바라키에 있는 PDP 2공장의 설비와 인력을 주력 생산라인이 있는 아마가사키 공장으로 이전하고,2공장은 OLED 생산용으로 전환한다는 방침을 확정한 상태다. 이 밖에 중국에선 창홍 오리온PDP 채용(COC) 등이 정부의 디스플레이 산업 육성책과 함께 PDP 사업에 뛰어들었지만 수요 위축 등으로 연내 제품을 생산하려던 계획을 내년 2분기께로 미뤘다.

◆왜 LCD 쪽으로 기우나

LCD 업계도 감산에 들어가는 등 글로벌 경기 침체의 영향으로 불황을 겪고 있기는 마찬가지다. 하지만 전체 평판 디스플레이 시장의 판세는 이미 LCD 진영으로 기울었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현재 세계 평판 TV 시장에서 LCD TV 대 PDP TV의 비중은 88:12 수준이다. 대략 LCD TV 9대가 팔릴 때 PDP TV 1대가 팔리는 셈이다.

상대적으로 일정 생산량을 유지할 수 있는 LCD진영이 '규모의 경제'측면에서 PDP보다 유리해졌다. LCD는 TV 시장 외에도 노트북과 모니터용 패널 등을 중심으로 시장을 확대할 수 있는 것도 강점이다. 기술적으로도 진화해 잔상 문제와 같은 화질상 약점도 크게 개선됐다.

PDP는 부드러운 동영상 구현이 가능하고 넓은 시야각 확보라는 기술적 우수성을 지녔지만,대중 시장을 선점한 LCD에 밀려 점점 설 자리를 잃고 있다. 결국 PDP 산업은 초대형 TV 시장에서 일부 명맥을 유지하는 수준이 될 것이란 전망이 많다. 업계 관계자는 "가격의 이점까지 사라지고 있는 PDP 산업이 경기 침체의 쇼크까지 겹쳐 위기로 몰리고 있다"며 "수요가 많은 대중 시장을 선점한 쪽이 결국에는 이긴다는 '시장 지배의 법칙'이 디스플레이 분야에도 적용되고 있다"고 말했다.

안정락 기자 jran@hankyung.com

[ 용어풀이 ]

PDP,LCD,OLED=PDP는 두 개의 유리판 사이에 있는 플라즈마라는 물질에 전기 충격을 가해 빛을 내는 방식이다. 부드러운 동영상 구현과 넓은 시야각 확보라는 기술적 우수성을 지니고 있다. LCD는 PDP처럼 스스로 발광하지 못하기 때문에 두 유리판 사이에 채워져 있는 액정을 '백라이트'가 뒤에서 비춰줘야 하지만,전력 소비가 적은 게 장점이다. 차세대 디스플레이로 각광받고 있는 OLED는 형광성 유기 화합물에 전류가 흐를 때 스스로 빛을 내는 '자체 발광형 유기 물질'이다. LCD와 달리 백라이트가 필요없다. LCD 이상의 화질과 단순한 제조공정으로 가격 경쟁에서 유리하며,넓은 시야각과 빠른 응답 속도가 강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