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은행이 12월 14일 임원인사를 단행했습니다. 부행장수를 11명에서 10명으로 줄이면서 7명의 부행장을 바꿨습니다. 이중 상당수는 이제 취임한지 고작 1년된 사람들입니다. 이종휘 은행장으로선 자신이 취임하기전에 선임된 부행장을 모두 바꾼 셈입니다.

물론 타당한 이유가 있겠지요. 저로선 잘 모르겠습니다만. 유독 우리은행 임원들이 자주 바뀌는 것에 대해 이런 저런 말이 많은 것 같습니다.

한 번 볼까요. 2007년 4월 취임한 박해춘 전 우리은행장은 작년 12월 14일 부행장 3명과 단장 4명등 7명을 전격 퇴진시켰습니다. 대신 부행장 4명과 단장 5명 등 9명을 승진시켰는데요. 이때 퇴직한 임원 7명은 모두 박 행장이 취임했던 작년 4월초 발탁한 인사들이었습니다. 8개월만에 물러난 셈인데요.

박 행장은 2007년 4월 취임했을 때도 부행장 8명과 단장 5명을 새로 선임했습니다. 이 때도 7명의 부행장이 우수수 옷을 벗었습니다.

이뿐 아닙니다. 2004년 취임한 황영기 행장은 기존 부행장중 2명을 제외하고 7명의 부행장을 물갈이 했습니다. 더 한 일도 있었죠. 이덕훈 초대 우리은행장은 지난 2001년 취임한뒤 부행장 전원을 바꿔버리는 ‘쇄신’을 단행하기도 했습니다.

최고경영자(CEO)가 바뀌면 아래 임원도 바꾸는게 당연한 수순입니다. 특히 정부가 대주주인 우리은행의 은행장으로선 주어진 임기동안 성과를 내기 위해선 자신의 마음에 맡는 사람을 요직에 등용하는 것이 이해가 되기도 합니다. 따라서 우리은행의 경우 ‘은행장을 왜 자주 바꾸나’고 타박해야지, ‘임원을 왜 자주 바꾸나’고 타박하는건 무리일 것이라는 생각도 듭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은행 임원들이 자주 바뀌는 또 다른 이유가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뭐냐고요? 순전히 추측입니다만, 다름아닌 ‘외부 입김’입니다. ‘외부 입김’이 하도 많다보니, 임원 시켜줘야할 사람도 많습니다. 자리는 한정돼 있다보니 수요를 충족하려면 자주 물갈이를 하는 수밖에 없다는 얘기입니다.

우리은행장이라는 자리가 그렇습니다. 우리은행의 대주주는 우리금융지주죠. 우리금융의 대주주는 정부이고요. 결국 정부가 직접적으로 임원인사를 좌우해도 아무런 문제가 없는 지배구조를 갖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다보니 임원자리를 두고 치열한 ‘힘싸움’이 벌어 집니다. 다른 어떤 은행보다도 ‘외부 입김’이 작용할 여지가 크기 때문이라고 할수 있죠.

어떻게 보면 임원은 두 번째입니다. 당장 은행장자리부터 그렇죠. 우리은행장을 선임할라치면 치열한 쟁투가 벌어 집니다. 내로라하는 후보자들이 나오고, 꼭 그 사람들 뒤에는 ‘후견인’이 따라 붙어 소문이 나돕니다. 후견인 대부분은 정부에서 힘깨나 쓰는 사람들인 것은 물론이고요.

이렇게 치열한 경쟁을 뚫고 은행장이 되려면 우선 능력이 뛰어 나야 합니다. 또 정부의 지지도 필요합니다. 적어도 거부의사는 없어야 합니다. 이 과정에서 음으로 양으로 신세를 진 사람들이 나타나기 마련입니다. 은행장으로선 후견인들을 무시할 수 없게 되는 거죠. 임원이 되려는 사람들은 이 점을 활용합니다. 은행장이 무시못하는 후견인에게 부탁하는 겁니다. 뿐만 아닙니다. 이른바 정부의 ‘실세’들에게도 줄을 댑니다. 은행장에게 한마디 해달라는 거죠.

이는 물론 어디까지나 가정이고 추론입니다. 이왕 이렇게 된김에 한발짝만 더 나가 소설을 마무리해 봅시다. 온갖 민원을 청탁받은 은행장으로선 난처해 집니다. 자기 소신대로 임원인사를 하자니, ‘후환’이 두렵습니다. 그렇다고 온갖 청탁을 다 받아주자니 경영을 제대로 할수 없게 됩니다. 더욱이 청탁을 다 받아주면 자리도 모자랍니다. ‘누구 청탁은 받아줬고, 누구 청탁은 무시했다’는 말이 돌 경우 안하느니만 못합니다.

이 난감한 상황을 어떻게 추스르느냐는 순전히 은행장의 소신과 판단에 따른 문제입니다. 그렇지만 상당수 은행장들은 이럴때 인사를 늦춥니다. 후견인과 실세들에겐 인사때 반영하겠다고 얘기하면 되겠지요. “경영상황을 파악하기 위해”라는 그럴듯한 명분도 주어집니다.

이제 결론이 도달했네요. 자리는 한정돼 있고, 임원시켜줄 사람은 많고. 택할 수 있는 길은 한가지입니다. ‘대폭적인 물갈이’입니다. ‘새술은 새부대에’ ‘분위기 쇄신’등 갖다 부칠수 있는 명분은 수없이 많습니다.

다시 한번 말씀드리면 이는 어디까지나 개인적인 추측입니다. 그렇지만 어느정도 사실과 가깝지 않을까 하는게 제 생각입니다. 실제 한 우리은행장은 현직때 사석에서 개인적으로 이런 고민을 털어 놓은 적이 있습니다. 그리고는 지나가는 말처럼 이렇게 얘기했던게 기억납니다. “그래, 밖에서 밀고 오는 청탁은 다 들어준다. 대신 자르는건 내 맘대로다”

외부의 청탁을 외면할수 없어 임원을 시켜주되 단기간내 잘라 버리는 전략이 최선이라는 판단을 이 은행장은 내렸던 셈입니다.

이번 우리은행 임원인사가 이같은 맥락에서 단행됐다고 믿고 싶지는 않습니다. 그렇지만 그동안 우리은행 임원인사를 둘러싸고 흘러 나왔던 얘기들을 감안하면 순수한 인사라고도 보기 힘든게 사실입니다.

어찌됐건, 우리은행 임원인사가 유독 잦고, 임원들의 재임기간이 짧은 이유를 생각하다보니 떠오른 ‘소설’입니다.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셨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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