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브란스병원이 지난달 이뤄진 법원의 첫 존엄사 판결에 대해 2심을 거치지 않고 곧바로 대법원에서 판결받는 비약적상고를 하기로 17일 최종 결정했다.

비약적상고(飛躍的上告)는 제1심의 판결에 대해 제2심(항소심)을 거치지 않고 곧바로 대법원(상고심)에 상고하는 제도를 말한다.

박창일 연세의료원장은 이날 기자회견을 통해 "생명에 관한 문제는 최대한 신중해야 하고, 자칫 초래될 수 있는 생명경시 풍조를 방지해 입법 전까지는 연명치료 중단의 기준에 관해 대법원의 최종적 판단이 필요하다는 법적 제한 등을 고려해 상소를 결정했다"고 밝혔다.

병원측은 이번 결정을 위해 지난 12월 4일 `환자에게 부착된 인공호흡기를 제거하라'는 판결문을 송달받은 이후 외부 종교인과 언론인, 법조인, 의료인 등이 참여하는 윤리위원회 회의를 7차례에 걸쳐 개최했다.

박 의료원장은 "하지만 환자와 보호자의 고통을 최소화해야 한다는 현실적 고려와 어떠한 경우에도 인간의 존엄성은 최대한 지켜져야 한다는 대명제에 따라 항소 없이 바로 대법원에 비약상고를 결정했다"면서 "정해진 비약상고 절차에 따라 즉시 원고측과 상의하겠다"고 덧붙였다.

비약적상고를 하려면 원칙적으로 원고가 세브란스병원의 방침에 동의해줘야 하지만 세브란스병원은 만약 원고측이 비약적상고에 동의하지 않는다면 항소심을 거친다는 계획이다.

하지만 원고측인 환자 보호자들은 변호사와 협의 중이며 세브란스병원의 방침에 어떻게 대응할지 아직 결론을 내지 못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병원측은 비약상고를 결정한 이유로 ▲환자의 기대여명이 3~4개월 밖에 남지 않았다는 점과 ▲응급의료에 관한 법률 제10조 `응급환자에 대한 진료를 중단할 수 있는 정당한 사유'의 적용에 있어 과오가 있다고 생각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또한 ▲보라매병원 사건에서 인공호흡기 제거가 살인죄로 성립되지 않으려면 사망시기가 임박할 것을 요구하고 있지만 이번 판결에서는 이에 대한 언급없이 인간의 존엄성만을 근거로 인공호흡기 제거를 허용하고 있어 기존 판례에 배치되는 측면이 있고 ▲사실상 이번 상소가 3심의 효과가 있기 때문이라는 게 병원측의 주장이다.

서울서부지법은 지난달 28일 식물인간 상태에 빠진 어머니로부터 인공호흡기를 제거해달라며 김모(76.여)씨의 자녀들이 세브란스병원을 상대로 낸 소송에서 김씨의 존엄사를 인정, 병원측이 김씨로부터 인공호흡기를 제거하도록 판결한 바 있다.

당시 김씨는 폐암이 의심돼 기관지경 시술을 받던 중 출혈이 심해지면서 심장이 멈춰 심폐소생술을 받은 뒤 중환자실에서 8개월째 식물인간 상태로 연명 중이었다.

현재도 김씨는 뇌간 기능만 일부 유지되고 있고, 자발적 호흡은 극히 미약해 인공호흡기 없이는 연명이 불가능한 상태다.

(서울연합뉴스) 김길원 기자 bio@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