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현실 <논설위원ㆍ경영과학 博 ahs@hankyung.com>

미 대선이 끝나기 전의 일이다. 리먼 브러더스 파산을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긴급 인터뷰에서 오바마는 이렇게 말했다. "이번 사태가 그만큼 심각하다는 얘기다. 재빨리 대응하지 않으면 또 다른 사태가 일어날 것이다. 따라서 정부의 신속한 대응이 필요하다. 그러나 분명한 기준이 있어야 한다. 국민 세금이 들어가는 만큼 월가는 상응하는 개혁을 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그 이익은 월가 밖으로 퍼져 나가야 한다. " 월가도 수긍할 수밖에 없는 분명한 논리가 있었다. 당시 모호한 답변을 한 매케인에 비해 오바마가 돋보였던 이유다.

대선이 끝난 지금 이번에는 실물부문 침체가 최대 관심사로 떠올랐다. 오바마의 민주당은 공화당 때문에 자동차산업 구제법안이 무산됐다고 비난한다. 하지만 대선 패배 후 오랜 만에 입을 연 매케인은 이 법안에 대해 "2~3개의 자동차 회사를 2~4개월 정도 버티게 할 뿐이지 결국 140억달러만 날리고 원점으로 되돌아갈 것이다. 자동차 업계가 높은 생산비용은 물론 노동자들의 임금과 혜택을 제한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번에는 그의 말이 돋보인다.

이들이 지지기반의 차이 때문에 그렇게 말한 것 아니냐는 분석도 있지만 오바마와 매케인의 발언에서 구조조정의 중요한 원칙들을 읽어낼 수 있다. 그 중 하나는 신속성이다. 신속하게 움직인다고 반드시 성공한다는 보장은 물론 없지만 시간을 끌면 끌수록 비용이 훨씬 늘어날 것만은 확실하기 때문이다. 과거 대공황 때와 달리 신속히 움직일 수 있는 제도적 장치가 돼 있는 점, 그리고 버블붕괴 4년 후에야 부실기업 처리지침을 내놨던 일본의 장기불황이 던지는 교훈을 떠올리면 특히 그렇다.

다음은 기준을 명확히 하는 것이다. 핵심은 당근과 채찍이다. 시장주도 구조조정이라도 그것이 가능할 수 있도록 인센티브 메커니즘을 디자인하는 것은 정부의 역할이다. 만약 시장주도 구조조정이 지지부진하면 그 이유는 이런 메커니즘이 모호하거나 제대로 작동하지 않은 때문으로 보면 틀림없다. 따라서 구조조정이 신속히 이뤄지려면 당근과 채찍이 어느 정도 수준이어야 하는지 정부가 재빨리 파악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구조조정 관계자에 대한 면책을 확실히 보장하는 것도 그 중 하나일 것이다. 물론 그렇게 하더라도 시장이 움직이지 않을 수 있다. 그것은 시장의 실패다. 시장이 항상 선(善)일 수만은 없고 보면 그 땐 정부가 직접 나서야 한다. 그 판단 역시 빠를 수록 좋다. 그러나 이 상황에서도 기준은 분명해야 한다. 정부의 실패를 줄이기 위해서다.

마지막으로 중요한 게 하나 더 있다. 매케인이 자동차에 대해 말한 것처럼 돈만 퍼붓는 구조조정이 돼선 안 된다. 당장 위기를 모면하고 보자는 그런 구조조정이 아니라 미래를 준비하는 구조조정이 돼야 한다는 얘기다. 생존가능한 기업에 유동성을 지원하고 한계기업에 대해서는 조속한 퇴출을 유도한다는 것은 궁극적으로 경쟁력을 높이고,새로운 기회를 만들어보자는 취지다.

신속한 구조조정, 기준이 명확한 구조조정, 미래를 준비하는 구조조정 이 세 가지 원칙은 지금 우리에게도 절실하다. 이번 기회에 여기저기 늘린 거품들을 과감히 걷어낼 필요가 있다. 잘만 하면 금융부문이든 실물부문이든 산업 전반에 걸쳐 완전히 새로운 그림을 그릴 수 있는 절호의 기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