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러캐리 트레이드 예고
日·中·ECB도 조만간 또 인하…초저금리 시대로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가 시장의 예상을 뛰어넘어 기준금리를 사실상 제로 수준으로 낮춘 것은 모든 방법을 동원해서라도 경기를 살리겠다는 강력한 의지를 드러낸 것으로 볼 수 있다. 미국이 금리를 인하함에 따라 일본 유럽 영국 중국 등도 금리를 추가로 내리면서 세계적인 초저금리 시대가 예고되고 있다. 또 달러 자금을 빌려 해외에 투자하는 달러 캐리 트레이드 가능성도 높아졌다. 달러화 가치는 약세로 전환될 것으로 보인다.

◆FRB,'금리'서 '통화량'으로 기조 변경

FRB가 기준금리를 낮췄어도 실질적인 효과는 크게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하루짜리 연방기금금리는 이미 11월 들어 0%를 조금 상회하는 0.3% 수준에 머물고 있다. FRB가 금융사 자산 매입을 통한 유동성 공급이란 '또 다른 화살'을 빼든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장기금리 하락을 유도하기 위해 장기 국채 매입을 검토하고,패니메이 프레디맥 등 국책 모기지(주택담보대출) 회사가 발행한 장기물 증권을 적극 매입함으로써 위험률을 반영한 금리차(스프레드)를 줄여나가겠다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모기지 금리가 떨어져 침체에 빠진 주택시장이 살아나고 경제도 회복될 수 있다는 게 FRB의 판단이다.

FRB가 금리 위주의 통화정책 방향을 발권력을 동원한 유동성 공급으로 전환한 것은 실물경기 및 고용사정이 크게 악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3분기 중 성장률은 -0.5%를 기록한 데 이어 4분기에는 -6%까지 떨어질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산업생산 개인소비 주택판매 등 경제지표는 일제히 곤두박질치고 있다. 11월 중 53만3000명이 일자리를 추가로 잃어 실업률이 6.7%로 높아졌다.

경기침체로 인한 수요감소로 디플레이션이 확산될 수 있다는 우려도 커지는 추세다. 11월 소비자 물가지수(계절조정치)는 전월 대비 1.7% 하락,사상 최대폭으로 떨어졌다. 대공황 연구의 권위자인 벤 버냉키 FRB 의장은 "디플레가 인플레보다 무섭다"고 강조해왔다.

하지만 FRB의 통화완화 정책은 미 국채에 대한 투자 매력을 떨어뜨려 자칫 외국자본 유출로 이어질 수 있다. 또 국제금융시장에서 엔 캐리 트레이드 대신 달러 캐리 트레이드(저금리 달러화를 빌려 고금리 통화자산에 투자)가 본격화될 가능성도 높다. 1990년대 일본처럼 통화공급을 아무리 늘려도 돈이 돌지 않는 유동성 함정에 빠질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존 하지어스 골드만삭스 애널리스트는 "기준금리 제로 수준에서는 투자자들이 극단적 위험회피 경향을 보이고 금융사들이 대출을 기피하는 현상이 빚어질 수 있다"고 설명했다. 윌리엄 풀 전 세인트루이스 연방은행 총재는 "돈을 계속 찍어내는 것은 결국 인플레이션을 가져 올 것"이라고 경고했다.

◆글로벌 초저금리 시대 예고

세계 주요국들도 줄줄이 금리를 더 낮출 전망이다. 홍콩은 이날 기준금리를 연 1.5%에서 0.5%로 낮췄다. 일본은행도 19일 금융정책결정회의에서 정책금리를 추가로 내릴 가능성이 커졌다. 일본은행 관계자는 "FRB의 금리인하로 미 금리가 일본 정책금리(0.3%)보다 낮아지는 역전현상이 발생했다"며 "이로 인한 엔고 우려가 금리인하 압력으로 작용하고 있다"고 말했다. 유럽중앙은행(ECB)도 현재 2.5%인 기준금리를 내달 추가로 인하할 가능성이 높다. 지난달 말 기준금리를 1.08%포인트 낮춘 중국 인민은행도 추가 금리인하에 나설 것으로 예상된다. 데이비드 매코맥 미 국제담당 재무차관은 "경기침체 타개를 위해 국제적인 추가 공조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한편 이날 10년짜리 미 국채 수익률은 연 2.28%로 사상 최저로 하락(채권값 급등)했으며,달러화 가치는 도쿄 외환시장에서 달러당 88엔대로 13년 만의 최저 수준을 보였다.

뉴욕=이익원 특파원 ik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