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리더십, 불도저 → 햄릿 → 쌍방향 불도저로

'혼돈과 시련의 연속.' 이명박 정부 집권 첫해를 함축하는 말이다.

10년 만에 진보에서 보수로의 정권교체를 달성한 이명박 정부는 48.7%의 대선 득표율과 530만표라는 압도적인 표차의 여세를 몰아 '경제 살리기'를 근저로 힘찬 출발을 예고했지만 기대와 달리 처음부터 삐걱거렸다. 각종 악재가 연이어 터지면서 흔들렸다. 지지율이 20%대에 머물면서 강력한 개혁드라이브를 걸기에는 역부족이었다.




◆리더십 변화

지난 1년 이명박 대통령의 리더십은 국정 및 사회적 상황에 따라 변화를 거듭했다. 인수위 시절 및 정권 초창기 공직기강을 다잡으며 강력한 개혁정책들을 밀어붙였다. "좌고우면하지 말라,너무 늦다,빨리 하라"고 공직자들을 다그치는 게 다반사였다. 최고경영자(CEO) 시절에 붙여진 이른바 '불도저형'의 리더십을 보여준 것이다.

그러나 '강부자 내각'논란을 일으킨 인선 파문,미국과 쇠고기 협상 타결 이후 불붙은 촛불시위 등은 잠시나마 깊은 고민을 거듭하는 '햄릿형'에 빠지는 계기가 됐다. 대국민담화와 기자회견 등을 통해 두 번의 반성문을 내놨다. 이 대통령은 "마음이 급했다. 광화문 일대가 촛불로 밝혀졌던 그 밤에 청와대 뒷산에 올라가 끝없이 이어진 촛불을 바라보았다. 아침이슬 노래도 들었다"고 소회를 밝혔다.

'8.15경축사'에서 녹색성장이라는 새 비전을 제시하면서 소통의 리더십이 부각됐다. 9월 국민과의 대화와 이어진 라디오 연설로 인해 '루즈벨트형 리더십'을 선보였다. 국민 여론을 살피고,'탈(脫) 여의도'에서 '귀(歸) 여의도'로의 변화를 꾀하면서 정치권 목소리에도 귀를 기울였다. 글로벌 금융위기는 다시 국정의 고삐를 바짝 죄는 동력이 됐다. 최근엔 새해 업무보고를 연말로 앞당기는 등 경제살리기 속도전에 불을 붙였다. 특유의 불도저형으로 다시 돌아오는 분위기지만,초창기와 달리 '소통'과 화합에 바탕을 둔 것이라는 게 청와대 측의 설명이다.

◆숫자로 본 MB정부 1년

취임식을 앞두고 75.1%(2월23일 미디어리서치)까지 치솟았던 이 대통령의 국정 지지율은 20%대 중반으로 떨어져 횡보를 거듭하고 있다.

지난 5월 한·미 쇠고기협상 결과에 반대하는 촛불시위 여파로 17%(6월7일)까지 추락해 역대 대통령 중 첫 해 지지율로는 최저치를 기록하기도 했다.

이 대통령의 지난 1년은 '친기업, 글로벌 행보'로 정리된다. "'비즈니스 프렌들리' 정부를 만들겠다"(2007년 12월29일 재계 총수와의 간담회)로 시작한 이 대통령의 친기업 행보는 연중 내내 이어졌다. 그는 1년 동안 기업 관련 일정을 28번 소화했다. 반면 노동계와의 만남은 지난 1월 한국노총을 방문한 것이 전부다.

현장.지방 방문은 GM대우, 관악 봉천 11동 원당재래시장, 가락동 농수산물시장 등 10여차례 이뤄졌다. 해외방문은 6차례 였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취임 첫 해 5차례 해외방문을 다녀온 것과 비슷하다. MB정부의 최대 난제인 '인사'와 관련해선 낙마 장관이 무려 6명이나 나왔다. 지난 2월 대통령 취임식을 전후로 이춘호 여성부 장관 내정자(2월24일 사퇴)를 비롯해 남주홍 통일부, 박은경 환경부 장관 내정자(2월27일) 등이 잇따라 물러났다.

또 7월에는 쇠고기파문 등과 관련해 정운천 농림수산식품부 장관, 김성이 보건복지가족부 장관 등을 교체했고 이어 특별교부금을 모교에 지원해 물의를 빚은 김도연 교육과학기술부 장관도 경질했다. 정치권과의 교류는 여당 대표 9차례, 야당 대표는 세 차례 만났다.

이준혁/홍영식 기자 rainbow@hankyung.com